지난달 6일 월요일 오전 9시 출근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가택수색을 당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12년 동안 재직 중이던 히로시마 시립대학이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는 거였다. 그런 일은 드라마 속에서나 있는 줄 알았다.

대학의 관할경찰서로 끌려가 인적 사항과 고소내용 등에 관한 간단한 조서를 꾸민 뒤 소위 '머그 샷'이라고 불리는 사진을 찍었다. 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판을 얼굴과 가슴 사이쯤에 두고 얼굴의 정면 측면 45도의 각도로 여러 장을 찍었고 지문도 양손의 열 손가락 손바닥 손의 측면까지 꼼꼼히 찍었다. DNA 샘플 채취는 거부했다. 포승에 묶이고 수갑을 찼지만 그들에게 내 유전자 정보까지는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과 자식들에 대한 예의다.

그 사이 대학에선 기자회견을 열고 총장이 직접 나서서 한국 국적, 여성, 부교수, 김미경, 53세가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범죄행위에 관해 준비한 자료를 배포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34만 엔의 해외출장비 허위 신청, 수령, 반환. 각 언론사와 당일 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뿌려진 보도 자료에는 2013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일어났던 상황 중에서 대학 측의 책임과 과실에 관한 부분들은 모두 삭제된 체 나에 관한 혐의만 기재되어 있었다. Q:연봉 800만 엔 이상을 받는 부교수가 34만 엔이라는 소액의 사기를 친 동기가 무엇일까요? A:그 부분은 알 수가 없습니다.

오후 4시경 경찰서에서 일단 조사를 마친 후 유치장으로 향하는 길목 어디쯤 누군가가 비디오카메라를 창 쪽으로 들이댄다.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경찰이 언론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관심이 있는 언론은 취재를 나온다'고 형사가 설명을 한다.

10분쯤을 달리자 낯익은 히로시마 시내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유치장은 놀랍게도 시내 한복판에 있다. 경찰차가 반 지하도로 쪽으로 하강하기 시작하자 회색 건물이 보이고 누군가가 또다시 비디오카메라를 갖다 댄다. 카뮈의 '이방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체포 당시 집에서 싸들고 간 바지 양말 스웨터는 입을 수가 없단다. 규정에 맞지 않는 '위험물품'들이라 다 압수당했다.

그 대신 바구니에 담겨 있는 운동복과 티셔츠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골라보란다. '유(留)'자가 적혀 있는 감청색 상하의와 'I Want to Travel the World'라는 문구가 가슴에 박혀 있는 하얀색 티셔츠를 골랐다. 오탈자가 없는 영어표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키는 156㎝, 체중은 52㎏. 맨 가슴을 풀어서 보여주니 점프 세 번 하고 하체도 보여 달란다.

유치장에서 난 31번이었다. 내 오른쪽 옆방은 39번, 왼쪽 옆방은 47번. "31번 밥 좀 빨리 먹어." "31번 손 흔들지 마, 여기가 네 집인 줄 알아?" "31번 나와서 세면해." "31번 얼굴을 보이게 취침하라고 했지." "31번 더 큰 소리로 인사해." "31번 감방문 아래쪽도 깨끗이 닦아." "31번 15분 목욕시간 끝." 20대의 예쁘장한 간수들은 그곳의 절대 권력자들이었다.

체포 첫날 받은 모포에는 긴 금발 머리카락이 여러 가락 붙어 있었다. 도대체 이곳 히로시마에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유치장 신세까지 졌을까. 모포에서 Nina Ricci의 L'air du Temps 향수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일부러 그쪽에 코를 대고 잤다.

오전 7시 기상. 점호. 침구를 창고에 운반하는 사이 간수들이 들어와 감방과 화장실 점검. 감방 청소. 오른쪽 구역에서부터 세면과 양치 시작. 세면대의 물기 닦고 정리. 아침 세면 시간에는 비누와 크림 사용 금지. 감방에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신체검사. 배식구를 통해 세 끼 도시락과 세 번의 식수 배급. 식사시간 15분. 운동시간 15분. 왼쪽 구역부터 산케이 신문일기 15분. 밤 10시 취침. 3층 경찰 취조실에 다녀올 때면 수갑과 포승을 한 채로 움직이고 끝나면 입안과 혀 밑, 두 발바닥 밑, 금속탐지기 검사와 3번 점프.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높게, 더 높게 점프.

체포 당한 지 사흘 만에 노동국 직원이 면회를 와서 대학에서 해고통지를 보냈다고 전한다. 8일 동안 취조를 한 형사의 한마디. "형사 생활 몇 십 년이지만 이런 사기 사건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체포 12일 만인 3월 17일 검찰의 불기소와 석방. 석방 2시간 뒤 대학에서 징계해고통지서를 전해준다. 그때서야 '그렇게 쫓아내고 싶었나' 싶다.

세계국제정치학회 인권분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