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0월, 리처드 닉슨 제37대 미국 대통령은 핵전쟁 훈련을 명령했다. 일명 '합참 준비태세 시험(Joint chiefs of staff readiness test)'. 인도차이나 반도와 대서양, 한반도 동해 등 전 세계에서 행해진 대대적인 무력시위였다. 목적은 북베트남과 그 배후 지원 세력인 소련을 군사적으로 압박해 베트남전을 끝내는 데 두어졌다. 작은 일에도 발끈해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줌으로써 원하는 바를 이루는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을 시험한 것이다.

이 이론의 연원은 닉슨이 부통령으로 보좌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제34대 대통령에게로 올라간다. "만족할 만한 정전협정에 조속히 서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전투 지역과 사용하는 무기의 제한을 제거하겠다." 아이젠하워는 한국전쟁 정전협상에서 중국과 북한에 이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중국으로의 확전과 핵 공격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그 결과는 64년째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 정전체제다. 닉슨은 이 전략을 베트남전에 다시 써먹었다. 하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베트남전에서 실패한 '미치광이 전략'이 국제정치 무대에 다시 등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다.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겨냥해 선제타격 으름장을 놓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미치광이'라고 규정하더니, 돌연 "그(김정은)와 만나는 것이 적절하다면 영광스럽게 그것을 할 것"이라고 표변했다. 우리에겐 새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에 기선제압식 공세를 취했다. 박근혜 정부가 미국이 부담한다고 공언했던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비용 10억 달러(1조1300억 원)를 한국에 물리겠다는 말과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끔찍한 협정이라며 재협상 수준을 넘어 종료 가능성까지 피력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사하는 '미치광이 전략'이 비정상적임은 굳이 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게 냉엄한 국제 현실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우리로선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내부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비정상적 요소가 없는지 성찰하기 위해서다. 외부의 비정상에 대처하려면 내부의 비정상을 먼저 정상화해야 한다. 그래야 내분 없이 단결된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에게도 비정상적 요소가 분명 존재한다. 민의를 수렴하지 않고 비밀리에 사드 배치를 결정한 데 이어 새 정부 출범 전에 '알박기'하듯 그 장비를 설치해버린 게 대표적이다. 미국이 한미 방위비(주한미군 주둔비용) 분담금 협상에서 사드 비용을 우리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인정하고서도 끝내 미국이 부담한다고 우긴 것도 그렇다.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한 지 5일 후인 지난해 7월 13일 김 실장이 출석한 국회 운영위 회의록에 그 사실이 나와 있다.

"(사드) 운영 비용 누가 댑니까?"(노회찬 의원) "미국 측에서 댑니다."(김 실장) "2018년부터 방위비 협상에 들어갈 텐데, 우리 분담금 속에 미국 측이 대는 사드 비용이 포함될 가능성도 있지요?"(노 의원) "액수가 많거나 적거나 포괄적인 의미에서 방위비 분담액이 주한미군의 인건비, 시설비 해서 항목이 나뉘어 있기 때문에 (사드 배치 비용) 항목이 포함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김 실장) 우리가 사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한국에 통보했고, 한국은 이걸 이해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유추할 수 있다. 김 실장은 맥매스터 보좌관과 통화한 뒤 "사드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기존 합의를 재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맥매스터 보좌관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실장이 하지 않은 얘기를 했다. "재협상이 있기 전까지는 원래 협정이 유효하다"는 언급이다. 미국 부담 합의가 지속되는 게 아니라 재협상을 통해 얼마든지 우리 부담으로 바뀔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모든 동맹국이 공정한 몫을 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비정상적인 사드 배치는 중국의 보복과 수조 원의 경제적 피해를 불렀다.

우리 내부의 비정상을 바로잡은 뒤에는 원칙과 상식에 따라 의연히 미국과 대화하는 것만 남는다. 두려운 건 할 말을 제대로 못 한 채 강대국에 일방적으로 휘둘리는 노예 근성이다. 미국 내에서도 무리함을 지적하는 '미치광이 전략'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1972년 파리에서 열린 베트남전 평화협상에 나선 당시 북베트남 레득토 협상대표에게서 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간명한 진리는 우리는 결코 항복해 노예로 사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당신들의 위협과 약속 위반은 타협에 도달하는 진정한 방법이 아니다." 그는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당당히 말했다. 그리고 3년 후 그의 말대로 북베트남은 결국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 승리했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