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께 필자는 부산시 관계자들과 원전 해체 및 미래 에너지 관련 연구 협력을 위해 미국 에너지부 산하 알곤 국립연구소와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란초세코 원전 해체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새크라멘토에서 시골길로 20여 분 달리자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들 사이로 거대한 냉각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1975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란초세코 원전은 913MWe 용량의 가압경수로 방식이었다. 체르노빌 사고 3년 후인 1989년 세계 최초로 주민투표를 통해 운영정지 결정을 내렸지만, 해체 계획과 예산이 없어 20년 동안이나 끌어오다 2016년 해체가 완료됐다. 해체 결정 후 란초세코를 소유한 전력회사 SMUD(Sacramento Municipal Utility District)는 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새크라멘토를 그늘로 뒤덮을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또 에너지원을 다변화시키고 공급원을 안정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 와중에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캘리포니아 정전사태 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재 SMUD는 LNG발전 56%, 수력발전 22% 그리고 재생에너지 19%의 비율로 캘리포니아 일부 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란초세코 원전의 해체를 통해 원자력 발전이 더는 오염이 없으며 값싼 기술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하는 전문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란초세코의 해체는 새크라멘토 주민들이 창의적으로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을 찾도록 유도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주도로에서 원전 부지까지 연결된 도로 옆에는 태양광 패널 설치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완료되면 총 200MWe 용량의 태양광 전기가 공급된다. 또 2006년 원전 부지 내에 세워진 500MWe 용량의 LNG 발전소가 멀리서 보였다. 란초세코 원전은 1991년 당시 해체 비용으로 2억8000만 달러가 예상됐지만, 결과적으로 해체 완료까지 총 5억 달러 이상이 투입됐다.

란초세코 원전의 해체 경험 중 특이한 점은 재이용 계획에 있다. 해체 후 원전 부지를 산업용 부지로 재활용하기로 했고, 그에 맞는 해체와 제염작업을 실시했다. 특정 용도를 염두에 두지 않고 무제한 개방을 목표로 정했던 코네티컷 양키 원전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비용과 시간 면에서 합리적인 해체를 단행했다고 볼 수 있다.

부지 내 건물에 대한 해체 계획도 특이하다. 건물은 폭파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두는 방식의 전략을 구사했다. 원자로 격납고를 예로 들면, 원자로와 노출된 파이프는 모두 제거하고 콘크리트는 오염된 부분을 제거했다. 대신 노출되지 않은 파이프들은 제염을 하거나 방사선학적 조사를 했다. 이후 격납 건물은 장기간 출입을 폐쇄하는 조치를 했다.

미국도 아직 최종 처분장이 마련되지 않아 란초세코 원전의 사용후핵연료와 고준위(GTCC) 폐기물은 부지 내 1만 4000평 규모의 임시 건식 저장시설(ISFSI)에 저장돼 있었다.

란초세코 원전 해체 현장을 돌아보면서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고리1호기에 대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고리2호기가 지척에서 운영 중인 상태에서 어떤 재이용 계획을 수립하고, 사용후핵연료와 중준위 이상의 폐기물을 어떻게 임시 보관하고 최종 처리할 것인지, 격납 건물을 완전히 폭파 해체할 것인지 아니면 남겨둘 것인지 등 앞으로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미국의 여러 해체 현장을 보면서 고리1호기와 재이용 계획 측면에서 유사한 란초세코 원전이나 2, 3호기가 계속 운영 중인 상태에서 해체된 산 오노프레 원전1호기 등의 소중한 해체 경험을 거울삼아 안전한 해체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여기에 원전 건설계획을 가지고 우리나라 원전에 대해 구매 의사를 타진한 영국, 고리1호기와 유사한 원전을 건설한 뒤 가동하지 않고 방치하다 이제서야 가동하겠다는 필리핀, 가동 중지에서 다시 재가동을 준비 중인 대만 등의 사례도 참고해야 한다. 란초세코 원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되새기며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전문가 집단 등 구성원 모두가 함께 참여해 현명하게 미래의 에너지 수급계획을 세워야 한다.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