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고(萬古)의 진리다. 볕이 강하면 그늘이 짙은 법이다. 사람은 억누르면 더 튀어 오른다. 강력한 통치엔 저항과 반발이 만만찮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살아 있는 권력과 죽은 권력을 대하는 세상 인심은 같을 수 없다.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지만 빨리 일어나는 게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요즘 경남은 홍준표 전 도지사의 공(功)과 과(過)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은 없고 과만 들춰내는 분위기다. 일부 시민단체와 범여권 등을 중심으로 홍 전 지사의 정책을 폐기하려는 시도도 일어나고 있다. 일명 '홍준표 흔적 지우기'다. '적폐청산'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홍 전 지사가 재임 때 자주 하던 대란대치(大亂大治)란 말을 되새겨 봤다. 그 나름의 통치 철학이 담겨 있을 듯해서다. 말 한마디도 치밀한 계산을 깔고 한다는 그이기에 해석이 의미가 있어 보였다. 다분히 자의적이지만.

'크게 어지럽혀야 크게 다스릴 수 있다'라는 의미의 대란대치. 청나라 5대 황제인 옹정제의 지배 전략이다. 홍 전 지사는 4년 6개월 전 취임하자마자 옹정제의 대란이 오버랩되는 일을 많이 했다. 그가 내세운 '부패와의 전쟁'은 옹정제의 권력 강화 전략이었다. 공직 기강을 잡는 데는 역시 감사를 활용했다. 옹정제가 관료의 부정을 감찰할 관료기구를 만들었듯이.

눈 밖에 난 고위 공무원을 별다른 역할이 없는 경남발전연구원으로 파견 보내는 도정연구관제에서는 옹정제의 정적 숙청이 떠오른다. 인사는 단기간에 조직을 장악하는 수단이었다. 진주의료원 폐쇄, 자치단체(창원시) 특정감사, 무상급식 중단 등 그가 추진한 일들은 지역 사회를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크게 다스리기 위해 크게 어지럽히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란이 곧 대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밥을 보장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백성은 등을 돌린다. 옹정제의 대란도 대치로 이어진 데는 경제 개혁이 결정적이었다. 홍 전 지사가 항공 나노융합 해양플랜트 등 국가산단 조성, 기계융합 구조 고도화, 항노화 산업 육성, 남부내륙철도 조기 건설, 서민복지 강화 등에 매달린 것도 그 나름의 밥그릇 만들기였던 것 같다.

홍 전 지사는 대선 출마를 위해 도지사직을 중도 사퇴하면서 "도정은 세팅이 다 돼 문제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경남이 미래 50년간 먹고 살 주춧돌을 다졌다는 자신감이다. 옹정제가 중국 최고의 황금기로 불리는 건륭제 시대의 토대를 닦았듯이.

하지만 무릇 사람이 하는 일은 계획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닌 법이다. 홍 전 지사는 경남에 강력한 흔적을 남기고 떠났다. 그 이후 2개월 보름이란 짧은 기간에 지역 사회는 홍 전 지사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세팅된 '홍준표'식 도정을 풀고 되돌리려는 세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좀 잘나가는 도청 간부는 부역자로 치부되는 분위기다. 홍 전 지사가 임명한 일부 출자·출연기관장의 거취를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홍 전 지사가 최대 업적으로 꼽은 '채무 제로' 정책조차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측이 있다.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입지가 모호한 후계 구도. 홍 전 지사는 중도 사퇴하면서 보궐선거를 무산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그래서 탄생한 게 지금의 권한대행 체제다. 이런 의미에서 류순현 행정부지사는 홍 전 지사의 덕을 입은 셈이다. 그러나 류 권한대행은 살아 있는 권력에 충성해야 하는 정통 관료다. 보장된 임기는 없고 다음 달로 예상되는 정부의 인사에 따라야 한다. '홍준표'식 도정을 계승하기에는 원초적인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확실히 청산하기에는 홍 전 지사와의 인연이 마음에 걸릴 법하다.

어정쩡한 입지 탓인지 류 권한대행의 거취마저 논란이다. 여권과 시민단체 등은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 전 지사의 불통 행정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도청 내부에서는 합리적이라며 유임을 바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렇다. 지금 봇물 같은 여론 분출의 가장 큰 원인은 불통이었다. 홍 전 지사 특유의 거친 표현은 많은 정적을 만들었을 터. 대란의 전략은 강력한 통치를 낳았지만, 다양성이 만드는 창의성을 짓누르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강압된 고요함 속에 잠복한 불만을 해소하는 과제는 홍 전 지사 이후의 몫이 된 것이다.

지금 홍 전 지사가 세팅한 도정은 위기에 처했다. 물론 경남 도정의 위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과거 청산 분위기에 편승해 공마저 묻혀 휩쓸려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다. 권한대행 체제란 틈새를 노리는 또 다른 권위의 출현을 막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 해결은 간단하다. 공은 취하고 과는 버리면 될 일이다. 그렇게 하려면 공과를 따져봐야 한다. 과도기 리더십이 그래서 중요하다.

경남취재본부장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