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에 도착하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그게 가능했다. 음속의 2배 속도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승객을 실어나르던 콩코드 여객기다. 런던에서 뉴욕까지 이 여객기로 3시간가량 걸리고, 두 곳의 시차가 5시간이니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셈인데 이를 광고에 활용한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합친 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음속 여객기는 2003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먼 거리만큼 시차도 커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DC와는 13시간 차이가 난다. 낮과 밤이 정반대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그곳에 도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현지 시간으로 30일 두 차례 정상회담에 이어 공동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니 우리는 이튿날 꼭두새벽에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할 판이다.

공식실무방문 형식인 문 대통령 일정에서 숙소가 화제에 올랐다. 문 대통령이 묵을 미국 정부 공식 영빈관인 블레어하우스는 국빈 방문이 아닐 경우 2박만 제공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번에 3박을 허용하면서 백악관이 한미 동맹의 중요성 등을 고려해 역대 최고 수준의 예우를 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은 국빈방문, 공식방문, 공식실무방문, 실무방문 등으로 나눠 외국 정상 예우를 달리한다. 블레어하우스는 펜실베이니아 대로를 사이에 두고 백악관 맞은편에 있다. 백악관까지 거리가 200m 남짓이라니 엎어지면 코 닿을 데다.

백악관이 고려한 것이 한미 동맹의 중요성뿐이었을까. 문 대통령은 워싱턴DC에 도착하자마자 '장진호전투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한미동맹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로 맺어졌다. 몇 장의 종이 위에 서명으로 맺어진 약속이 아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한미 동맹 의지를 이미 확인했으니 그가 이번 정상회담의 네 가지 주요 의제, 즉 한미동맹 강화, 북핵 해결 방안, 한반도 평화 실현, 경제 협력 및 글로벌 협력 심화 가운데 마지막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대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무역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는 백악관 관계자 이야기가 그 예다.

'국익 우선 협력 외교'를 표방한 문 대통령이다. 핵을 포함한 대북 문제 해법을 제시한 만큼 경제 분야도 동반자 입장에서 당당하게 대처해야 한다. '영빈관 청구서'는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