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영화 '옥자'를 둘러싸고 여러 이야기가 많지만 내가 '옥자'를 보며 인상 깊었던 것은 오프닝 신에 나오던 스태프의 자막이다. 왼쪽에는 해외 스태프, 오른쪽에는 국내 스태프가 나란히 어깨를 견주며 한 화면을 채우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국내 영화인과 해외 영화인의 협업을 통해 상호 성장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애쓴 흔적이 '옥자'의 크레딧에 오롯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옥자의 배급과 관련된 이슈들에 가려져 영화를 만든 이들이 함께 기울인 노력이 묻힌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옥자'를 보며 성장이란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성장이란 말은 듣기 좋은 말이지만 지지부진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성장이라는 말이 남용되는 데 비해 실제 성장에 들어가는 수고를 치르기가 만만찮아 무주공산이 되기 쉬운 탓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현상유지와 성장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실다운 성장은 어렵다는 말이다. 시작할 땐 누구나 입에 담지만 끝맺음에선 슬그머니 숨어버리기에 십상인 성장. 하지만 이렇듯 더디게 찾아오는 성장을 놓지 않으려는 것은 성장만큼 우리를 살찌우는 즐거움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모퉁이극장이 새로운 도정을 앞두고 다시 마주하게 된 단어도 '성장'이다. 관객들의 극장을 꾸려오며 슬로건처럼 내세웠던 것이 시민 관객들이 조금 더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성장을 돕는 일이었다. 열악한 관객의 자리와 기반을 다지려면 프로그램을 통한 활동의 결실이 관객들 저마다의 성장으로 이어져야 했다. 바쁜 일상에서 때론 성장이란 말이 버겁기도 했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프로그램의 주체로 참여한 관객활동가들에게 성장의 보람을 맛보게 하는 일만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시민자치와 시민주체 활동을 전면에 내세웠으니 시민들끼리만 행사를 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지 않으냐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활동에 어째서 기성 문화예술인들이 함께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 경험을 쌓으면서 시민들의 성장에는 동기부여와 건강한 긴장을 줄 수 있는 동료들도 꼭 필요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시민 관객들을 응원하고 그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영화인, 문화예술인들이 조력자로 참여하는 장을 적극 마련하고 있다. 이들은 강사라는 수직적인 지위로서가 아니라 친구이자 동료로, 무엇보다 관객이란 공통분모로 만나 수평적으로 어울리고 있다.

지금 모퉁이극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다. 1년, 2년 꾸준히 참여하며 다양한 기회를 발판삼아 함께 호흡을 맞추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아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문화로 내려앉은 일들도 있는데, 그 한 가지가 행사의 진행에 있어서 관객활동가와 문화예술인이 콤비로 진행을 맡아 경험과 노하우가 순환되도록 한 일이다. 또한 말과 글에 능숙한 이들과 더불어 아직 서툰 이들도 성장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스크린쿼터제처럼 '관객쿼터제'도 운영해보고 있다. 이 제도는 성장의 기회를 어떻게 고르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나왔다. 시민들이 문화활동의 주체로 성장하기까지 필요한 시간과 기회를 충분히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성장을 견인하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우리가 가진 성장에 대한 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보아도 우리 모두의 균등한 성장을 고민하는 이가 드문 것이 아쉽다. 내 것을 챙기는 데에는 본능적으로 계산이 빠르지만 상대방과 구성원 전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보는 역지사지가 쉽지 않다. 이것은 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상호성장을 위한 균형감각을 키우는 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탓이다.

성장은 한 개인의 성장만을 말할 때는 그늘지는 단어가 아닐까. 어떤 성장이 가능했다면 그 성장의 혜택이 고르게 돌아가기 위해 의욕하고 배려한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시민 관객들이 모퉁이극장에서 쾌적한 대화를 나누고 행사를 진행하고 영화리뷰를 쓰며 문화활동의 즐거움을 알아갈 수 있었다면 그것은 먼저 그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몫을 내어주거나, 나누어 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러한 활동을 문화로 지속시켜 가려는 수많은 이의 실천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정 기간 나눔의 가치를 보살피고 실천한 상호적 활동의 결과로서만 온전하게 성장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퉁이극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