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구 복천박물관은 1996년 10월 시립박물관 복천분관으로 개관할 당시 매장 문화재가 발굴된 그 자리에 세워진 우리나라 첫 박물관으로 관심을 모았다. 바로 ‘미지의 왕국’ 가야의 신비를 푸는 열쇠라는 사적 제273호 복천동고분군이다. 그동안 200여 기의 무덤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야토기, 철제무기, 갑옷, 투구, 금동관과 방울 7개가 달린 장신구인 칠두령 등 유물 1만2000여 점이 출토됐다.

하이라이트는 1980년 12월 11호분과 22호분 발굴이다. 주택들이 고분군을 깔고 앉아 있어 도굴 피해를 비껴간 처녀분이었다. 11호분에선 가야 금동관이, 11호분 바로 옆 부곽에선 말머리 가리개가, 22호분에선 칠두령이 수습됐다. 금동관은 한강 이남에서 출토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형태이고, 말머리 가리개는 국내 첫 사례이며, 칠두령은 국내에서 유일하다. 무엇보다 다량의 덩이쇠(철정)와 갑옷이 쏟아지면서 ‘철의 왕국’의 실체가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는 왜가 4세기 가야를 지배했다는 일본 학계의 임나일본부설을 깨는 계기가 됐다. 1500년 이상 잠들어 있던 가야의 혼이 부활했다며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유다.

복천동고분군은 사적 제192호인 동래패총, 제539호인 연산동고분군과 함께 최근 문화재청이 선정한 전국의 가야 관련 문화재 26개에 포함됐다. 문재인 정부 국정 100대 과제에 포함된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의 일환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국정과제에 넣어달라’고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가야사가 경남과 경북은 물론 섬진강 주변, 광양만, 순천만, 심지어는 남원 일대, 금강 상류에까지 미친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관련 지역에선 가야사 복원 붐이 일고 있다. 경남 김해시 등이 가세하면서 옛 가야 영토인 20개 영호남 지자체가 모두 참여하는 모임이 오는 31일 국회에서 처음 열리는 것이 그 예다.

부산시도 발걸음이 빨라졌다. ‘가야문화를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해 가야사의 온전한 복원에 기여하고 고대 부산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며 4개 영역 17개 사업으로 꾸려진 ‘부산지역 가야문화 연구·복원사업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사업비가 2000억 원에 이른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앞서 이번 기회에 부산 가야사를 제대로 정립하겠다는 자세로 학계와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