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고 지루하고 길었던 여름의 끝자락에 서면 항상 가슴 한구석에 기대감이 싹튼다. 반가운 가을이 살며시 얼굴을 내밀면서 무더위를 저만치 밀어내는 시기가 아닌가. 낭만의 가을은 언제나 사람 마음을 설레게 한다.

지구온난화, 온실효과, 환경오염,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계속 녹아내리고 세계 각국의 높은 산들이 자랑하는 만년설의 급격한 감소 등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기후가 점점 아열대성으로 변한다 해도 8월 하순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처서가 지나면 아무리 무더운 기운도 그 기력이 다하기 마련이다. 일단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기운을 느낄 정도로 기온의 변화가 급격하고, 후텁지근하고 끈끈하던 분위기도 뽀송뽀송한 쪽으로 선회를 한다.

이미 9월로 접어든 지금 우리는 어느 순간부턴가 탈바꿈한 신선한 기운을 알게 모르게 접하고 있다. 아무튼, 계절의 오묘한 변화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 앞에서 나약한 우리는 옷깃을 여밀 뿐이다.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계절의 순환 현상을 늘 경건한 마음으로 맞이하자.

올해 처서는 지난 8월 23일이었는데, 처서(處暑)라는 글자의 의미는 그 무덥던 더위가 이제 원래의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뜻이다. 일 년 중에서 사람들의 입맛이 가장 당긴다는 가을은 덥지도 춥지도 않아 사람이 느끼기에 딱 좋은 습도와 온도를 지닌 시점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의 묘미는 그래서 생겨난 것인가.

한자로는 ‘가을 추(秋)’이고 영어로는 ‘autumn’인데, 미국에서는 이 ‘autumn’보다는 ‘fall’을 주로 사용한다. 그런데 영어사전에서 이 ‘fall’을 찾아보면 ‘떨어지다’ ‘지다’ ‘쓰러지다’등의 뜻풀이가 나온다. 그런가 보다. 가을이 깊으면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고 그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다운되는가 보다. 그러니까 가을 추(秋) 밑에 마음 심(心)이 합쳐지면 근심, 염려, 그리움의 뜻을 가진 수(愁)가 되어 수심가(愁心歌), 향수(鄕愁), 애수(哀愁) 등의 낱말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절묘한 계절의 묘미를 느낀다. 이런 가을이 우리 인간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사연 많은 가을 노래가 수없이 회자되고 있지만, 또 남다른 메시지를 담은 가을 노래가 나와 사람의 심금을 자극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지 않은가.

어쨌든 염천 더위에 시달리고, 또한 늦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삽상한 가을 바람은 한 줄기 청량제가 아닐 수 없고 우리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주는 고마운 계절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기후가 점점 아열대성으로 바뀜에 따라 앞으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여름은 더욱 길어지고 상대적으로 가을이 자꾸만 짧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와 귀함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지는 느낌이다.

가을은 그 깊이를 더할수록 맛이 난다. 단풍, 낙엽, 고독, 사색, 추억, 회한, 여행, 독서, 손편지, 음악회, 시 낭송회, 연극, 영화 등의 아련한 문구들을 떠올릴 정도로 사람들에게 나직하면서도 로맨틱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매년 세월이 되풀이지만, 또다시 맞이하는 가을이 던지는 묘미는 그때마다 색다르다.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이고 지금까지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가을이 왔다가는 갔었지만, 여러분 모두 반드시 올가을은 내 생애 최고의 가을이 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각자 취미나 취향에 따라 독서와 여행, 스포츠와 각종 동호회, 오페라와 뮤지컬 무대 관람, 연극이나 영화 감상, 각종 모임과 만남, 손편지 쓰기와 시 낭송 참여, 기부와 봉사 활동, 정감 어린 회식 자리와 노래 부르기, 사색과 명상 등을 통해 이번 가을에는 아련한 추억의 반추나 새로운 추억 만들기 등으로 지치고 무뎌진 내 마음을 살찌우자.

가을은 낭만과 사색의 계절이자, 고독의 계절이다. 또한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면서 아울러 다가오는 추운 겨울을 대비한 월동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실속의 계절이기도 하다. 곧 다가올 겨울의 기나긴 추위를 이기기 위한 준비를 지금부터 철저하게 해야 하고, 특히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강추위나 폭설 등에 대한 사전 대비도 필요한 시기가 가을이라는 점도 잊지 말자.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의 모진 추위를 맞이할 때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반드시 생각하고 조그마한 것이라도 함께 나누고 서로 돕는다는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자세를 절대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춘하추동 -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차례로 왔다가는 다시 바뀌고 또 왔다가는 바뀌는 대자연의 조화로움과 이 우주의 오묘한 천변만화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터득하기 위해서라도 비록 소찬일지라도 안주 삼아 지인들과 어울려 소주잔이라도 기울이는 여유를 가지자.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계절 가을에는 할 일도 많다.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