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루카치의 ‘미학’을 요즘 읽고 있다. 루카치 문체의 특징을 아는 사람이라면 짐작하겠지만, ‘미학’ 또한 그의 문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보통 두 페이지쯤 넘겨야 끝이 나는 문단의 전환, 주제를 이끌어가는 서술의 빈틈 없이 긴밀한 구성력, 화두를 넌지시 던지고 그것의 유의미성과 무의미성을 특유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시각에서 갈무리 짓는 단호함이 그의 만년의 대작인 이 책에 스며 있다. ‘소설의 이론’에서는 찬란하고도 뭉클한 지적 쾌감이 나를 흔들었다면, 이 책은 그러한 의미의 파토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어느 날 나를 감동하게 했던 에세이의 저자가 평생을 두고 개진해 온 미학이론의 집적물이라는 점에서 다소 경외심을 가지고 읽어나갈 뿐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야말로 종이 위의 글자만 보게 된다. 어느 순간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하면 앞의 내용을 다시 훑어보고 찬찬히 진도를 나가야 하는 책이다. 가끔 한 장 넘기는 데 삼십 분 정도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한 문장을 읽는 데만도 십 분가량의 지적 노고를 쏟아부어야 할 때도 있다. 역자 해설에 따르면 그의 ‘미학’은 원래 총 3부로 계획되었는데 그가 죽는 바람에 제1부 격인 ‘미적인 것의 고유한 특성’(‘미학’의 본래의 제목)만 출간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이 독일어권 독자들도 읽어나가기가 어려운 지독하게 난해한 책이어서, 그의 특출한 제자 중의 한 명이 축약본을 발행해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축약본이 아닌 초판본 ‘미학’은 실제로 축약본의  배 분량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제자가 축약본을 만들 때 루카치 자신이 직접 감수를 했다 하니 신뢰를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번역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책은 축약본을 번역한 것이다.

오래전에 ‘미학’(총 4권)을 구입하고 나서 이제 겨우 2권을 읽고 있으니 내가 어지간히도 게으른 모양이다. 며칠 전 이 책의 결론 부분이 뭘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제4권의 맨 마지막 부분을 봤다. 거기엔 괴테의 말이 인용되고 있었으니, 그 인용구가 ‘미학’의 마지막 메시지인 셈이다. 기억을 더듬으면 그 구절은 이랬던 것 같다. 

‘과학과 예술을 가진 자는 종교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둘(과학과 예술)을 가지지 못한 자는 종교를 가져야 한다.’

아마 ‘미학’에서 루카치가 제기한 이론과 그 논증을 최대한 압축시킨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반대로 이 구절을 최대한 늘이면 ‘미학’이 된다. 과학과 예술은 그것의 탁월한 자기의식과 현실반영의 성격 때문에 주술이나 종교 등이 흔히 머물게 마련인 ‘탈-인간 중심적’ 성향에서 이미 탈피해 있다. 하지만 루카치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적 노동의 발전과 그로 인한 생산력 확대, 역사의 진전은 주술시대를 딛고서야 가능해졌다. 그러니까 이 구절은 유(類)적 인간이 취해야 할 속성을 재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그가 주문하는 것은 개별적인 것에 함몰하기 마련인 낱낱의 인간에게 역사적 인간, 늘 생성하면서 유동하는 인간, 유적인 것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보유하여 이전의 낡은 생활이나 사고방식을 지양할 수 있는 활성을 회복하고 선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웬만하면 책에다 ‘낙서’를 하지 않는다. 물론 그게 딱히 미덕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그런데 구태여 낙서를 할 수밖에 없는 저자들의 책이 있다. 이들의 독서가 언제 끝날는지 지금으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지속적으로 이들을 읽고는 있지만, 늘 나오는 건 한숨이요 지적 열등감이다. 하지만 그들을 넘어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터를 잡고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는 일상적 태만과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읽고 또 읽어야 한다.

평소 알고 지내는 한 비평가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그 표정과 말투에 담긴 확신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가 확고부동하게 판단하는 ‘부재하는 신’의 정체는 무엇일까. 신이 있다고 믿느냐, 없다고 믿느냐에 대한 개별적인 판단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아마도 종교적 신앙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초월적인 상태가 결국 이성의 기능 저하나 마비를 가져온다고 믿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성이란 무엇일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찬란했던 그리스 문명을 싹 틔웠던 동력이었으며 이후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동안 한 번도 패권을 놓쳐버린 적이 없는 ‘이성’이란 이름의 리바이어던.

과학과 예술의 영역에 깊숙이 들어간 사람은 아마도 자신이 오랫동안 신봉했을 가치관이나 특정의 신념을 반추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너에게 묻는다. 만약 너와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이든, 그 믿음이 가져다주는 편안한 지적 보호망을 걷어차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신념이 아니다. 허상이 만든 허깨비요, 우상이 최면을 걸어놓은 가수면 상태일 뿐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