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하면, 어느 곳이 연상될까. 여행 애호가에게는 신트라시의 호카곶(串)과 ‘카보 다 로카(Cabo da Roca)’가 될 성싶다. 유라시아 대륙 서쪽 끝 부분으로, 이곳의 10ｍ 높이 기념탑이 카보 다 로카다. 기념탑에 새겨진 포르투갈 국민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글귀, ‘여기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가 유명하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 수가 연간 1000만 명이라고 하니, 대표적 랜드마크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호카곶은 유라시아 대륙 최서단이란 상징성 외에도 관광지로 이름이 높다. 깎아지른 절벽의 해안 풍광과 주변 산책로가 일품이고, 인근 신트라 도심지에는 잘 보존된 중세 유적지와 왕실 궁전 등 볼거리가 수두룩하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이유다. 그렇다 해도 해안의 곶과 조그만 기념 돌탑 하나가 수많은 인파를 불러모은다는 사실이 놀랍다. 얼마 전 울산 울주군이 간절곶 현지에 실물 그대로의 카보 다 로카를 설치, 새해 첫날 해맞이 축제 때 일반에 공개한다고 밝혀 더 관심이다.

초고층 빌딩이나 거대 건축물이 도시 랜드마크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호카곶 기념탑 사례는 신선한 느낌을 준다. 엄청난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집객과 도시 브랜드 효과를 톡톡히 누려서다. 부산시도 2년 전 부산판 ‘카보 다 로카’를 추진한 적이 있다. 유라시아 관문 도시 부산을 세계에 알리고 관광거점화한다며 북항에 그걸 벤치마킹한 상징조형물을 짓는다는 거였다. 제법 의욕적으로 진행하다가 결국 흐지부지된 모양새다.

랜드마크는 뜻 그대로 어떤 지역을 대표하거나 구별하게 하는 표지, 상징물이다. 과거에는 가장 높은 성당이나 교회 첨탑이 그 기능을 맡았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미국 뉴욕을 필두로 ‘높이 다툼’이 촉발되면서 하늘 주도권은 기업에 넘어갔다. 빌딩 자체가 광고물이자 도시 경제력의 핵심 브랜드로 통했던 까닭이다. 21세기에는 마천루의 주무대가 아시아로 바뀌면서 건축물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중동에서는 조만간 높이 1000ｍ가 넘는 빌딩마저 등장할 판이다.

하지만 세상 변화에 따라 랜드마크의 모습도 달라지는 추세다. 상공을 향한 수직 위주가 아니라, 낮거나 긴 수평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 뉴욕 ‘하이라인 파크’가 그중 하나다. 도심 흉물이던 폐철로를 허물지 않고 재생해 보행로와 고가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초기 계획부터 참여하고 의사를 결정한 건, ‘열린 랜드마크’의 모범으로 평가된다. 관이 주도한 서울 청계고가로 철거(청계천 인공 복원) 사업과는 다르다.

이런 맥락에서 건축전문가 송하엽(중앙대) 교수의 말은 음미할 만하다. “랜드마크는 한 시대의 열망을 보여주는 엑스레이(x-ray)다. 전통적 랜드마크는 그 높이가 이정표 역할을 했지만, 앞으로는 길 자체가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다수가 공유하는 열린 랜드마크가 있는 도시가 곧 문화적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가 될 것이다.” 현대적 랜드마크도 주변 경관축이 확보되어야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랜드마크는 그 주위에서 시민들이 한 번이라도 공유의 장을 체험했는지가 중요하다는 점도 그렇다. 의미 충만한 현상이 일어났을 때 그곳은 공유의 장이 되고, 진정한 랜드마크라는 얘기다.

그런데 부산시를 보면 안타깝다. 랜드마크나 상징물에 대한 인식과 자세가 여전히 초고층 건축의 틀에 머물러 있는 듯해서다. 북항에 뉴욕 ‘자유의 여신상’ 같은 상징조형물을 건립하는 계획을 추진하니 말이다. 관광상품화라는 목적도 어김없이 붙었다. 아직 결정된 사항이 없다지만, 입지 후보와 1000억 원 사업비 등이 이미 거론된 데다 의견수렴 명분의 라운드테이블을 운영한다니 실행의지가 강해 보인다.

호카곶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작은 기념탑 하나로 연간 10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인하는데, 부산시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전시성 건축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하이라인을 모델로 삼는다는 부산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의 그린라인 개발사업도 독창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사후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

어제 ‘부산도시계획헌장’이 제정 선포됐다. 부산이 유라시아 관문임을 명시한 헌장에는 미래 도시 100년을 약속하는 10대 원칙과 가치가 담겼다. 시민계획단에 의해 완성된 거라 의미가 깊다. 그 전문 중에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우리는 부산만의 독창성을 살려 공공의 가치가 우선되는 공정하고 투명한 도시계획과 바다, 산, 강이 조화로운 해양수도를 만들기 위해 힘을 모은다’. 바로 여기에 부산 랜드마크와 상징물의 올바른 방향이 함축돼 있다. 이제 중요한 건 실천이다. 상징적 선언에만 그쳐서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도시, 지속 가능한 도시가 되기 어렵다.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