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자는 말이다. 특정 현안이 발생했을 때 해결책의 하나로 자주 제시된다. 자신에게만 이득이 되도록 행동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와 대립된다.

새해 들어 역지사지가 다양한 분야에서 쓰일 것 같다. 최저임금 인상에 직면한 사업주와 근로자, 핵가족화가 심화되는 가족 등. 한 발 더 나아가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 간에도 이 고사성어가 통용될 수 있다. 강 건너 이웃인 경남 김해시와 부산시가 이 말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최근 양 시가 각종 현안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김해공항 확장이 결정된 후 김해지역의 항공기 소음 문제, 개통을 앞둔 부산외곽순환도로(기장~진영읍) 명칭 문제를 놓고 양 시는 양보 없이 맞서고 있다.

최근 서병수 부산시장이 ‘공항입지를 흔들지 마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김해지역 민간단체인 김해공항건설반대대책위원회는 “현재 4분 간격으로 항공기가 뜨고 내린다. 이대로 두면 시 전역이 소음공장으로 바뀐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다음 달 완공을 앞둔 부산외곽순환도로의 명칭 문제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김해시는 도로가 기장~양산~진영읍으로 이어지는 데 왜 특정 지명만 사용하느냐고 불만을 제기한다. 김해 출신 민홍철 국회의원은 수차례 국토교통부에 이 문제의 시정을 요구했다.

김해시와 부산시는 2016년 6월부터 부산김해행정협의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속이 없다. 지난해까지 세 차례 만남에 그쳤고 큰 이슈는 조율이 안 된다. 의욕적인 출발과 달리 동력이 많이 떨어진 분위기다.

더구나 오는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는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표를 얻으려고 양 도시 간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갈등을 부추기는 발언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냉정하게 보자. 역사, 지리, 경제, 주민의 생활권을 살펴보면 부산과 김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일부 사업이 삐꺽거리지만 서로 힘을 모으는 사업도 적지 않다. 특히 김해와 부산은 낙동강을 건너는 도로 건설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김해 대동~부산 북구 화명동을 연결하는 도로(화명대교 포함)와 동김해IC~식만 JCT 광역도로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 도로들이 완공되면 교통대란에 시달리는 양 지역 통행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도로가 연결되는 대동면과 화명동 일대 낙후지역 주민들도 반기고 있다.

양 시의 발전사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신평·장림공단 등에서 많은 기업체가 김해로 이주,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발전을 일궜다.

앞으로도 양 시의 상생 발전을 위해 보조를 맞춰야 할 일이 넘쳐난다. 김해시는 가야사 복원에 맞춰 대성동고분군, 김수로 왕릉이 있는 김해지역을 관광지로 개발 중이다. 김해공항이나 부산 북항에 도착하는 크루즈선을 통해 유입되는 관광객들이 대거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시는 관광자원이 다양해지는 등 파이가 커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김해와 부산은 서로 협조해야 할 사안이 산적한 만큼 ‘윈윈’을 전제로 지혜를 짜내야 한다. ‘역지사지’란 말은 ‘양보’의 미덕을 앞세울 때 더욱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사회2부 부장 fe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