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도중 정치 분야에서 지방분권 개헌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지방정부가 주민을 위해 더욱 밀착해서 더 많은 일을 할 역량을 갖췄다는 요지의 지방분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밝혔다. 그런데 다음 진행을 이어간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말은 현 정부의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정치 분야 질문이 계속되다가 지방 쪽에서 질문이 나왔으므로 이 분야 질문을 3개 더 받겠다”고 말한 것인데, 지방분권 개헌은정치 분야가 아니라는 것인가. 평소 지방에 대한 청와대 내부의 인식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얼마 전 기자와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부산에서 BNK 사태가 터지고 부산지역 언론에서 그렇게 기사를 썼는데도, 정작 청와대 안에서는 이런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르더라”며 청와대 내 지역에 대한 낮은 인식도를 전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약속한 문 대통령이지만 정작 집권 이후 지방에 대한 관심이 공약을 내놓을 당시처럼 유지되는지에는 의문이 든다.

역대 대통령 중 지방에서 생활하다가 대통령이 된 경우는 문 대통령이 사실상 처음이다.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문 대통령의 발언을 살펴보면 ‘지방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 대통령 캠프 내에서는 집권에 대비해 대통령 비서실 구상을 하면서 지방분권 수석실을 만들 계획도 세웠다고 할 정도로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고 한다. 청와대 소식에 정통한 한 인사는 문 대통령이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가 무척 강하다는 것을 확언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아무리 지방분권의 구호를 외친들, 주위 참모들이 호응하지 않는다면 무슨 성과가 있겠는가.

현 정부 지방분권 정책의 양 날개는 지역발전위원회와 지방자치발전위원회이다. 청와대에서 이들 위원회와 소통하는 곳은 균형발전비서관과 자치분권비서관실이다. 그러나 얼마 전 황태규 전 균형발전비서관은 지방선거 출마를 이유로 5개월 만에 비서관에서 물러났고 균형발전비서관이 공석이 된 지 한 달이 다 되는데도 후임 인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음 달 1일 문재인 정부의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로드맵 발표를 앞두고 균형발전비서관의 부재 문제는 시급히 해결할 과제다. 자치분권을 총괄하는 나소열 자치분권비서관도 사정이 다를 바 없다. 얼마 전까지도 지방선거 출마를 두고 저울질한 것으로 알려진 나 비서관은 총선 출마로 선회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청와대 내에서 그나마 지방과 관련된 정책을 맡은 비서관들이 새 정부 출범 직후 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의 기반을 닦는 것보다 선거판에 마음을 빼앗겨서야 지방분권이라는 국정 과제를 완수할 수 있겠는가. 지방과 관련이 없는 분야 참모진의 지방에 대한 몰이해는 말할 것도 없다.

지방분권의 핵심이라고 할 재정 분권과 관련해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 관련 부처들의 논의가 다음 달 말까지 진행 중이다. 그런데 벌써 재정 분권과 관련해 국민의 세 부담이 가중된다는 논리로 수도권 기반의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신고리5·6호기 중단’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모두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실현되지 않았다. 지방분권 공약도 참모진의 지방에 대한 몰이해로 추진 동력을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서울정치부 부장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