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곱씹다보면 재미있는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원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란 말도 그 가운데 하나다. 가축을 가두는 ‘우리’와 형태가 같다. 이는 아마도 ‘울타리’와도 상관이 클 성싶다. 가축이 ‘우리’를 이탈하면 그에 따르는 응당한 대가가 주어진다. 주인의 눈에 안 띄게 아주 멀리 달아나 버리면 상관없지만, 그 둘레에 어정쩡하게 서성대다가는 다시 ‘우리’에 영락없이 갇힐 운명에 빠진다. 그 ‘우리’에 갇힌 가축은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안심하게 된다.

의지와 상관없이 어디에 소속되어 구성원으로서 참여할 수밖에 없는 인간 사회다. 가족, 학교, 회사나 군대처럼 사람인 이상 어떤 형태로든 동아리나 집단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엮이게 되는 ‘우리’가 아닌, 특정한 믿음과 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결성하게 되는 ‘우리’가 있다. 일종의 동질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다른 구성원들과는 차별되는 가치와 지향점을 모색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대개 눈에 띄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암묵적인 실천 규약과 체계를 갖춘다.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부류의 커뮤니티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생각한다. 설령 공동체에 반하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더라도, 이 또한 공동체라는 ‘우리’의 넓은 경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 중화되거나 무마되어 버린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만든 ‘우리’에서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영역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리라.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어쩌면 이런 수많은 ‘우리’가 있어서 세상이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를 조금 삐딱하게 생각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우리 너머의 상상력이랄까, ‘우리’에 갇히면 우리는 본능조차 무뎌진 가축처럼 되기 십상이다. 특정의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우애만큼 강렬한 집단 정서도 없다. 혹은 특정한 사상이나 철학의 전통을 따르고 공유하는 지식계층의 지적 커뮤니티만큼 배타적인 신념체계 또한 드물다. 이런 우리의 습성이 쌓이고 확산되어 시간이 흐르면 마치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의 얼굴을 하고 사람들의 정신체계 윗자리에 서게 된다.

굳건한 이데올로기가 탄생하는 때다. 진리는 이데올로기가 아니지만 이데올로기는 때때로 진리를 자처한다. 스스로 진리를 자처하는 이데올로기는 울타리 밖의 수많은 ‘우리’를 포섭하거나 배척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진리가 된 이데올로기의 함정과 덫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자신이 속한 믿음과 신념의 공동체 바깥의 사유에 진입해야 한다.

자기 확신이 형성되려고 할 때쯤 영락없이 빠지게 되는 허상의 그물을 걷어버려야 하겠다. 2세기경의 대표적인 이단 운동의 하나였던 몬타누스주의는 황홀경이나 광신적인 경향이 있는 영적인 언어 망상을 특징으로 해서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렸다. 종말론적 이단운동이었던 몬타누스주의의 창시자 몬타누스는 자신을 성령의 대변자로 자처하며 성령께서 자신을 통해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였고, 자신이 거룩한 성서들의 권위보다 위에 있음을 강조했다.

‘가톨릭’이라는, 거대한 보편종교적 ‘우리’에 반기를 들었지만 결국 ‘몬타누스주의’라는 또 다른 하나의 ‘우리’를 부지불식간에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우리 밖의 상상력’은 자신의 실존을 건 모험을 수반한다. 그렇다면 누가 나를 ‘우리’에서 건져내어 떼어 놓을 것인가. 가상화폐 열풍과, 집단 안전 불감증과 공동체적 무기력 회의 불안이 휩쓰는 이 시대에 과연 누가 무수한 ‘나’를 끄집어내어 불편부당한 청정의 바다로 데려갈 것인가. 그곳이 존재한다면 그 바다는 필시 자유의 바다일 것이다. ‘우리’를 넘어선, 사해(四海)를 휘젓는 세계일 것이다.

우리와 생각이 다르거나, 혹은 우리가 평소에 상상하지 않는 일을 하는 자들에게 여지없이 매질을 가하는 우리들이다. 물론 윤리적인 도의(道義)를 거스르는 자들을 비판할 수는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어찌 보면 식상한 경구가 되어버린 시대다. 우리는 마치 영원히 죄짓지 않고 살 것처럼 죄지은 사람을 단죄하려 든다. 우리는 자신과 다른 생각과 신념을 가진 자들을 향해 손가락질할 자격을 갖추었는가.

순한 양 한 마리가 저도 모르게 울타리를 빠져 나가 들판을 헤매는 것을 본 ‘우리’ 속 양들이 한탄하지만 그들이라고 어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우리’ 속에 갇혀 살아야만 안심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그렇다. 툭하면 건드리고 말을 나눌 수 있는 동류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내 이런 생각은 ‘우리’라고 별 수 있겠는가, 하는 뜬금없는 상상에서 비롯되었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