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40대 여성이 승마장에 왔다.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타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말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부터 설명했다. 제일 순한 말을 골라 네 발을 들어 발굽 청소하는 법부터 알려줬다. 그분이 직접 발굽 청소를 하려 하자 말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소리도 질러보고 말 다리를 때려도 말은 꿈쩍하지 않았다. 다리 하나 내어주지 않았다.
혼자 용을 쓰던 그분은 몇 분이 지나자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못 하겠어요. 꼭 말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나는 다시 말에게 다가가는 법을 설명했다. 겁먹지 말고 말에게 좀 더 낮고 안정된 톤으로 말하라고 했다. 손에 긴장을 풀고 목덜미부터 쓰다듬으며 내려가 말 다리를 지그시 눌러보라고 가르쳐줬다. 그분의 손길과 눈빛에서 긴장이 사라졌다. 말은 바로 자신의 발굽을 들어 보여줬다. 그때서야 그분은 숨을 깊게 내쉬더니 미소를 지었다.

말 등에서 눈물을 보이는 사람을 많이 봤다. 말이 안 통하는 말에게 자꾸 지는 느낌이 들거나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답답하기 때문이다. 말 앞에서 사람은 겁을 내고, 무기력해지고, 작아지게 된다. ‘감히 동물 따위가’라는 마음에 말이 미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채찍이나 박차로 말에게 화풀이하는 경우도 봤다. 그럴 때 승마는 ‘말을 타는 것’이 아니라 ‘말과 싸우는 것’에 가까워진다.

말은 본디 무뚝뚝한 동물이다. 천성은 착하지만 경계심이 강하다. 당신이 방마장에서 놀고 있는 말에게 뚜벅뚜벅 걸어간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을 처음 보는 말은 당신을 경계하며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만약 다가온다면 그것은 당신이 반가워서가 아니라 ‘혹시 저 사람이 당근을 들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에 젖어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반대로 낮은 톤으로 ‘워’라고 말하며, 손바닥을 말의 시선 아래쪽으로 보이고, 매우 천천히 다가간다면, 대부분의 말은 당신 쪽으로 모가지를 쭉 빼며 관심을 보일 것이다.

경계심이 많은 말은 본능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읽고 스스로도 같은 감정을 가진다. 내가 긴장을 하면 말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내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을 내밀면 말도 부드럽게 행동한다. 말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지금 내 심신 상태를 알 수 있다.

나는 매일 말을 통해 느낀다. 통계적인 수치, 책에서 얻은 지식, 논리적인 고뇌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논리보다는 직관, 이성보다는 감정의 교류가 때론 더 필요하다는 것을. 승마는 곧 소통이다.

‘대화’가 힘든 말과 호흡을 맞춰야 하다 보니 사람은 생각이 많아진다. 혼자만의 생각은 고집과 아집·악습을 만든다. 승마에서 생각은 내 머릿속의 작은 방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묻는’ 생각이어야 하고 ‘대답하는’ 생각이어야 한다.

승마는 결코 수학이 아니다. 혼자 연구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트레이너나 주변 승마인과 상의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여러분의 스승, 말에게 물어보기를 권한다. 지금 당신의 말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말과 소통하자. 말은 그 누구보다 당신에게 솔직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 친구이자 스승이다.

승마는 ‘말과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 사회의 소통도 이와 많이 닮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상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목적이 같다고 할지라도, 내가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소통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반응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는 말(言)이 고와야 오는 말(馬)이 고운 것은 승마의 이치이기도 하다.

승마 국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