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탈피(脫皮) /김영호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8-03-04 19:18:34
| 본지 29면

다큐멘터리에서 허물 벗는 매미를 본 적이 있다. 자기 몸을 보호하던 그 껍질을 전력을 다해 벗어 던졌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매미는 왜 허물을 벗을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이나 다른 동물도 허물을 벗지 않을까?

허물을 벗는다는 것은 분명 ‘새롭게 태어남’이다. 애벌레의 모습을 벗어내고 성충이 되기 위해 매미는 허물을 벗는다. 그래서 허물을 벗는 탈피(脫皮)는 곧 성장이다. 사람이 때를 밀 때도 아픈데 껍질 전체를 벗어던지는 이 과정은 얼마나 힘이 들까 싶지만 매미는 이 힘든 과정을 거쳐 매미다워진다.

사람도 눈에 보이지 않는 허물이 있다. 나를 지켜주는 것 같은 그 허물들은 역사가 깊다. 수십 년은 기본이다. 평생의 삶이 빼곡히 배어든 껍질이다. 기쁨 고통 외로움 눈물이 모두 담긴 껍질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 껍질들과 이별을 고(告)해야 할 때가 온다. 일상이 지루해서 떠나고 싶은 정도의 가벼운 느낌일 수도 있고, 이 일을 계속하다가는 제 명(命)에 못 살 것 같은 심각한 공포가 엄습하기도 한다. 이때가 바로 평생 나를 지켜줄 것 같던 껍질들이 ‘진짜 나’로 인해 부서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평생을 함께해온 이 껍질들이 나에게서 떨어지려는데 고통이 없을 수 없다. 낯설고 외롭고 힘들다. 그렇다고 못 본 척 다시 껍질 속에 머무른다면 ‘진짜 나’와 만나는 시간은 더욱 늦어진다. 또다시 매일매일 내면의 목소리와 투쟁해야 한다.

이때 머무르지 않고 과감히 껍질을 벗어던져야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껍질을 벗어던진 직후는 춥고 힘들겠지만 곧 익숙해진다. ‘나답지 않은 것’을 벗어던지니 조금 더 ‘나다운 모습’과 만난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어쩌면 새로운 것을 더하고 붙여 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나답지 않은 것을 하나둘 떼어나가는 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오랫동안 체득한 것, 학교나 사회를 통해 교육받은 것들은 진짜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던 것들이다. 이런 껍질은 너무 오래 나와 함께 했던 것들이라 떼어내기 힘들고, 떼어낼 때도 고통스럽다. 이 고통을 참아내며 떼어내는 과정이 탈피(脫皮)다.

우리는 개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그 요구는 개인의 행복보다는 훌륭한 사회 구성원이 목표인 경우가 더 많았다. 대부분의 ‘착하고 평범한’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당연한 교육’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 과정에서 원래의 ‘나’는 점점 사라진다. 우주에서 처음 태어날 때의 그 밝은 빛이 점점 그 명명(明明)함을 잃어간다.

이때 마음속에서 들리는 ‘외롭다, 힘들다’는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자. 허물을 벗고 한 단계 올라갈 때 들리는 내면의 목소리다. 그 허물을 벗겨내다 보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재주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를 위해, 남을 위해, 세상을 위해 그 재주를 쓰다 보면 돈이 저절로 들어온다.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껍질을 벗어왔다. 껍질을 벗을 수 있는 용기는 곧 성공의 비결이기도 하다.

껍질을 벗고 나면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바뀐다. 세상(外)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는데 내 삶(內)이 달라진다. 결국 껍질을 벗는 탈피는 밖을 보는 내 안의 시선을 바꾸는 과정이다. 무엇(what)을 보느냐에 몰두했던 시선을 어떻게(how) 볼 것인가로 바꾸는 과정이다. 성공으로 가는 길이 하나뿐이던 시선에서 다양한 각자의 길을 끝까지 완주하면 모두 성공한 인생이 되는 세상으로의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