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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기하학 단상 /조송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3-12 18:46:14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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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 영국의 철학자 알프레드 화이트헤드가 한 말이다. 플라톤이 구축한 철학 체계가 오늘날까지 서구 사상을 지배한다는 의미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발을 들이지 말라.” 플라톤이 아테네 근교에 세운 대학 ‘아카데메이아’의 정문에 걸려 있었다는 문구다. “철학자 플라톤이 웬 기하학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지 모르겠다. 아카데메이아는 정치지도자를 양성하는 대학인데, 정치학 윤리학 철학뿐 아니라 기하학과 천문학도 가르쳤다. 요즘 용어로 ‘융합형 인재’ 양성기관이었다고 할까.

플라톤은 왜 정치지도자 지망생들에게 기하학을 가르쳤을까. 기하학은 이름(geometry)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 이집트 등에서 ‘땅을 측량하는’ 현실적인 필요성에 의해 탄생한 학문이다. 그런데 기하학은 그리스로 넘어오면서 관념의 세계를 다루는 학문으로 변신한다. 플라톤은 기하학을 현실 문제 해결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논리적인 사유(철학)의 방법론으로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자신의 이데아 철학을 이해시키는 데도 기하학을 활용했다. ‘이데아(idea, eidos)’는 ‘모든 존재와 인식의 근거가 되는 항구적이며 초월적인 실재’ ‘사물의 원인이자 본질’ 등으로 불리지만 쉽게 와 닿지 않는 개념이다. 그는 이데아가 실재이고 현실은 이데아의 모사품이라고 주장했다. 직관으로 수용하기 힘든 이 같은 개념을 플라톤은 어떻게 설명했을까.

아마 플라톤은 자신보다 150년쯤 먼저 태어난 피타고라스가 ‘이상적인 기하학적 도형’을 ‘이데아’라고 불렀다는 사실에 힌트를 얻었던 것 같다. 이데아를 완전한 기하학적 도형에 비유한 것이다. 예를 들어, 물질세계에서 땅에 그린 삼각형은 완전하지 않지만 완전한 삼각형을 상상할 수는 있다. 같은 이치로 불완전한 현실세계의 배후에는 완전한 이데아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설파한 것이다.

플라톤은 나아가 기하학을 우주론으로 확장했다. 이 우주는 기하학적 원리에 의해 생성되고 운행한다는 이른바 ‘기하학적 우주관’을 제창했다. 플라톤의 우주론이 기술된 ‘티마이오스’에 따르면 우주는 기하학적 원리에 의해 창조되었고, 물질의 근본 입자는 가장 기본적인 기하학적 형상을 가져야만 한다.

여기서 가장 단순한 도형인 삼각형이 물질의 근본 입자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당시 물질을 이루는 4원소가 불 공기 물 흙이라고 할 때 플라톤은 이들 원소를 구성하는 근본 입자를 통찰한 것이다. 원자가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원소라고 알려졌던 19세기 초에 그 원자를 구성하는 더 근본 입자인 ‘쿼크’를 예언한 것과 비슷하다.

플라톤 이후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과 정수론을 집대성한 저서가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The Elements)’이다. 기원전 3세기에 발간된 이 책은 20세기 초까지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명저다. ‘기하학 원론’이 수학사의 가장 영향력 있는 ‘최초의 수학 교과서’이자 인류 지성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교양서로 평가받는다는 방증이다.

이 책이 이처럼 엄청난 사랑을 받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유클리드의 업적을 요약하면 ‘공간 관계의 논리 연구’이다. 시각적 추론과 논리적 증명을 집대성했다는 뜻이다. 시각적 추론은 공간을 인지하고 새로운 공간을 시각화하는 것을 말한다. 컴퓨터그래픽 디자인을 비롯한 현대의 거의 모든 컴퓨터 관련 작업은 이에 의존한다.

유클리드는 단지 23개의 정의, 10개의 공리(엄밀하게는 5개의 공리와 5개의 공준)를 갖고 엄밀한 추론을 통해 기하학이라는 거대한 성채를 건설했다. 서양의 모든 학문에서 논증의 모델이 된 이유다. 뉴턴의 불멸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스피노자의 ‘에티카’, 미국의 ‘독립선언문’ 등이 ‘기하학 원론’의 형식을 따랐다.

융합형 지식에 바탕한 창의력이 요구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기하학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한데 “전공에 꼭 필요한 학생은 대학에 가서 배우면 된다”며 기하학을 이과 수능과목에서도 제외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시대에 역행하는 교육부 관계자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에라이, 무식한!”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동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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