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포토라인에 선 이명박 전 대통령. 그리스 신화 속 에리직톤을 빼닮았다. 탐욕에 기갈 들린 행적에 기가 찬다. 수많은 혐의는 구질구질하다. 공천헌금까지 받아 챙겼다는 의혹은 치사하기 짝이 없다. 그 욕망의 끝은 어디였을까. 국민은 된통 속았다. 유권자의 손이 부끄럽다.


어쩌면 탐욕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 전 대통령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권력의 사유화를 막아야 한다. 개헌을 통한 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어리석음을 털어내는 일도 필요하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장면을 TV로 지켜보다 어떤 개의 영상이 떠올랐다. 이솝 우화의 한 대목 말이다. 훔친 고깃덩이를 문 개가 개울의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그러다 물에 비친 제 그림자를 본다. 물 위의 개가 물고 있는 고깃덩이를 탐낸 다리 위의 개가 왕하고 짖는다. 그래서 제 것마저 물에 떨어트린다.

포토라인 밖에 진을 친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인생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탐욕 많은 늙은 개처럼 보였다. 평생을 요리조리 용케 피해 다녔지만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물고 있던 고깃덩이를 뱉어내야 할 시간, 제가 진 업보의 무게를 재야 할 시간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고 보면 그는 그리스 신화 속 에리직톤이 아닌가. 여신 데메테르의 신성한 숲을 도끼로 쳐낸 죄로 먹어도, 먹어도 허기를 면치 못하는 벌을 받았던 사람. 전 재산을 먹는 데 썼지만 끝내 제 딸까지 팔아치운 사람. 그러고도 끝없는 기갈을 견딜 수 없어 제 몸뚱이까지 뜯어먹은 사람. 이명박은 탐욕에 기갈 들린 바로 그 사람이 아니었던가.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을 빼고도 벌써 네 번째 옥살이를 하는 전직 대통령을 보게 될 판이다. 이번엔 두 명이 한꺼번에 나라가 주는 밥을 먹는 꼴을 보게 될 것 같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정례행사이고 보니 국민들도 어지간히 면역이 돼 덤덤한 표정이다. 언론만이 여전히 호들갑스러워서 그의 집 앞에 진을 치고, 드론까지 띄워 검찰 출두 장면을 생중계했지만 이번엔 그 흔한 보수단체의 시위조차 없었다. “이명박을 구속하라!”란 한 여성의 새된 외침이 그의 뒤통수에 꽂혔을 뿐.

올해로 딱 70년이 된, 우여곡절로 점철된 헌정사에서 우리는 여러 유형의 대통령을 겪었지만 이명박 같은 사람은 또 처음이다. 다들 알다시피 샐러리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현대건설 회장을 지냈고, 국회의원과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됐으니 보기 드문 입지전적인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다스’란 회사가 제 것인지, 아닌지는 제쳐 두더라도 그동안 벌어둔 돈도 적지 않을 텐데 온갖 뇌물을 받아 챙겼다니.

포토라인에 선 그는 “민생경제가 어렵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환경이 매우 엄중할 때 저와 관련된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뇌물죄로 불려온 주제에 민생경제, 안보 걱정이니 이거야 원, ‘똥 싸놓고 매화타령’이란 속담대로가 아닌가. 검찰이 도곡동 땅과 다스의 실제 주인이 당신 아니냐, 당신이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받아 챙기지 않았느냐고 신문하자 ‘아니다’ ‘모른다’ ‘실무선이 한 일이다’ 하고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고 한다. 글쎄, 창피함은 왜 늘 국민의 몫이어야 하는지.

그가 받고 있는 혐의는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 도곡동 땅이나 다스의 차명 소유 의혹은 그렇다 치자.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것, BBK에 투자한 돈을 돌려받는 데 든 소송비를 삼성더러 대신 치르게 한 것, 대통령에 당선된 후 기업에 세금 거두듯 ‘축하금’을 징발한 혐의도 한 눈 감고 넘어가 주기로 하자. 그런데 국회의원 공천헌금까지 받아 챙겼다는 건 또 뭘까. 공천헌금 자체가 범죄이긴 하다. 그래도 그렇지 하다못해 여당이 선거자금으로 거둬 쓰도록 놔두지 푼돈(?)까지 샅샅이 핥았다는 거 아닌가. 흰개미를 긴 혀로 쓸어 먹는 나무늘보 같다.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사탕발림에 속는 셈 치고 그를 뽑아준 유권자들도 그가 이렇게까지 치사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을 거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와 치고받을 때,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BBK가 어떻다고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하고 외쳤던 그의 ‘새빨간 거짓말’을 짐짓 믿어주고 표를 주지 않았던가. 역대 대통령들이라고 돈 받아먹은 허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는 ‘대통령을 하다 보니 돈을 받아먹은 게 아니라 돈을 받아먹기 위해 대통령이 된 사람’이란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 명예면 명예, 하나면 족하지 죄다 가지려고 설쳤으니 ‘하늘에서 황금비를 내린다 해도 욕망을 다 채울 수는 없다’는 법구경 말씀이 떠오를밖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고 되풀이 회고했던 그다. 적빈했던 유년의 상처를 보상받기 위해 그는 그렇게 돈에 탐닉했던 걸까. 그 탄탄했던 포스코의 재정을 거덜 냈다는 자원외교나 대형 건설회사에 ‘부엌데기 국솥 푸듯’ 세금을 나눠줬다는 4대강 개발 의혹은 아직 한 자락도 들춰지지 않았다. 나라 창고에 빨대를 꽂아 쪽쪽 빨아먹은 전모가 드러나면 우리는 또 얼마나 놀라야 할지.

그런데, 검찰청에 출두한 이명박을 보면서 나는 또 다른 개 이야기가 생각났다. 독일 철학자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에 나오는 구절이다. “푸줏간 앞을 서성이는 개의 시선을 닮지 않도록 조심하라.” 푸줏간 진열장에 걸린 시뻘건 고깃덩이를 보고 개가 눈알을 번득인다. 들어가 고깃덩이를 물고 달아나자니 주인이 무섭다. 그냥 돌아서자니 고깃덩이가 너무나 탐이 난다. 그래서 개는 푸줏간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만 있는 것.

‘니체의 개’는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글쎄, 인간이란 원래 탐욕스러운 존재 아닌가. 이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차마 법을 어기지는 못하지만 돈 욕심은 어쩔 수 없어서 푸줏간 앞의 개처럼 서성이는 존재가 우리라고나 할까. 그러기에 이명박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았던가. “부자 되세요”라는 TV 광고 카피가 덕담처럼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허겁지겁 국밥을 먹다가 욕쟁이 할머니에게서 “이놈아, 밥 처먹었으면 경제는 꼭 살려라”는 지청구를 듣던 선거 광고 속의 그 사람에게 몰표를 던져주지 않았나. 열심히 ‘밥 처먹은’ 그이는 국민 아닌 제 주머니나 채우고 말았지만.

권력을, 나라의 곳간을 사유화한 이명박 시대의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용산 참사’가 아니었던가. 재개발이네, 제2의 두바이네 하며 거품 같은 욕망의 신기루를 바벨탑처럼 세우려던 바로 그 자리에서 화염이 타오르고 철거민들의 아우성이 메아리치던 9년 전 겨울날 아침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푸줏간의 개’처럼 기갈 들린 시절을 살았던 거다.

이명박 같은 부류가 우리의 지도자가 되는 세월은 그만 살고 싶다. 그러자면 개헌도 한 방편이 되긴 할 거다. 개헌에 대해선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현행 헌법으로 30년을 꾸려온 ‘87체제’는 소명을 끝낼 때가 되긴 했다. 새로운 시대정신에 따라 새 옷을 갈아입을 때도 된 거다. 감옥에 끌려간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를 낳은 현행 헌법이 보장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그렇게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내놓은 ‘4년 연임제’는 좀 더 깊이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문화를 일신하는 일이다. 제대로 된 지도자를 골라내는 우리네 눈썰미를 더 날카롭게 다듬는 일이다. 그러지 않고선 개헌을 아무리 한들 ‘그 나물에 그 밥’ 아니겠나. 아니, 우리 내면에서 들끓고 있는 ‘욕망의 용광로’를 식혀야 할 것 같다. 권력자란 사람은 우리의 욕망을 정확히 꿰뚫고 그것을 들쑤셔 권력으로 치환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 아닌가. 제1차 대전 후 피폐한 삶에 절망한 독일인의 상실감을 ‘파시즘’이란 그물로 걷어 올린 히틀러도 국민의 자유선거로 뽑혔던 거다.

‘적폐청산’이 특정 정권의 구호만은 아닐 터이다. 죄지은 권력자와 하수인을 옥에다 잡아넣는 일만도 아니다.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는 게 다가 아니기도 하겠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뱀처럼 똬리를 튼 탐욕과 질시, 어리석음을 걷어내는 일일는지도 모른다. 불경은 우리에게 ‘탐진치(貪瞋癡)’, 탐욕 노여움 어리석음을 경계하라 이르지 않던가. 그렇게 보면 ‘적폐청산’은 우리네의 탐진치를 걷어내는 일상 속의 정신운동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문명의 길을 여는 개안(開眼)의 다짐이 돼야 하지 않을까.

혀를 빼물고 철벅거리는 포도를 걸어가는, 털이 젖은 개 한 마리가 창 너머로 보인다. 지금은 추적추적 비 내리는 어떤 봄날 오후다.

소설가 ·경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