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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미투 없는 세상 꿈꾸며 /이승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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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좀 당해도 돼.” 대학 시절 한 여 선배와 술자리에서 ‘남성 역차별’을 주제로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술기운 속에 입씨름이 뜨거워지자 그 선배는 그렇게 일갈했다. ‘좀 당해도 되는’ 이유를 고민해보지도 않고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 숙이고 술잔만 기울였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SNS에서는 ‘미투’ 운동이 불길처럼 퍼져 과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폭로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글을 본 남성들은 피해 주장 여성의 고통에 공감하는 목소리를 내거나 침묵으로 이 운동에 이의 없음을 표시한다.

학창시절을 되짚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원죄의식’이 발동한 것 같다. 성 권력의 우위에 있는 남성성을 자연발생적으로 얻은 데서 오는 미안함이 죄의식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에 권력형 성폭력에 숨죽여온 여성들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식의 폭로가 사회적 공감을 얻으면서 남성들의 원죄의식은 더 커졌다.

그런데도 미투의 과정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에 우려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프레시안이 정봉주 전 국회의원으로부터 한 여성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보도했고, 이 매체와 정 전 의원 간의 진실 공방이 한창이다. 그리고 정 전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 출마 선언 뒤에 더불어민주당 복당이 불허됐다. 민병두 의원도 자신의 술자리 성추행 논란이 불거지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에서 만류하고, 부인이 나서서 “권력형 성폭력과 거리가 멀다”고 두둔해 사안의 진실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일련의 사태에는 공통점이 있다. 폭로자가 지목한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피해 주장 내용의 진위와 상관없이 해당자는 사회적 비난을 감수한다. 법적 판단은 그다음 일이다. 이 과정에서 실명이 공개된 이는 명예 훼손 등의 피해를 당했다. 선(先) 폭로를 기반으로 한 미투의 위험성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이런 현실에도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성인의 68%가 미투를 지지했다. 그 방식이 어떻건 권력형 성폭력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고통받아온 여성들의 한 맺힌 폭로가 지지를 받은 셈이다. 그간 이런 여성들을 위한 구제 장치가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우리 사회는 미투에 신중하게 귀 기울이는 동시에 여성이 폭력과 권력 앞에서 저항하고 피해를 호소할 사회 분위기와 제도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됐을 때 비로소 미투가 필요 없는 사회가 올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대학 시절 선배는 지금도 14년 전처럼 말할지 모르겠다. “남자들은 좀 당해도 돼.”

디지털뉴스부 thinkboy7@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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