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가 떠났다. 마당에 매화가 피고, 얼어붙은 땅에 새 생명이 움찔대는 봄에 그는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겠다며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나보다 먼저 귀촌을 하여 내가 사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골에 홀로 버섯을 키우며 유유자적하게 살던 동갑내기 친구였다. 고향이 같아 가끔 그와 내가 사는 곳의 중간지점에서 만나 술을 마시던 친구라 나는 내심 몹시 섭섭했다.
사실, 그 전부터 그는 이곳을 떠나있었다. 지난봄에 그는 홀연히 그곳을 떠나 지인이 출판사 대표로 있는 파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편집 보조와 영업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랜만에 보는 그가 낯설지 않았다. 그날은 그가 살던 산골의 집에 나머지 짐을 가지러 오는 길이었다. 그는 이번에 일 년간 머물던 파주를 떠나 자신의 경험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철원 비무장지대의 한 농장으로 간다고 했다.
읍내의 허름한 술집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활달하고 유쾌한 표정이었다. 원체 소주보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그였지만 그날은 이별주로 독한 소주로 정했다. 제대로 된 헤어짐의 미학을 맛보자고 그가 먼저 제안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그는 늘 그랬듯이 세상을 초월한 것 같은 눈빛으로 내게 행복한지 물었다. 나는 순간, ‘행복’이라는 단어를 얼마 만에 들어보던지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시골에서조차 일상에 묻혀 일희일비하며 사는 나로서는 그가 던진 질문이 너무 생소했다.
선뜻 대답을 못 하는 나에게 그는 날더러 잠시 떠나라고 했다. 그는 내 표정에서 세상과의 불화를 포함한 일상의 고단함을 읽고 있는 듯했다. 자신 역시 도시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들을 둔 아버지로서 꽤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았지만, 홀로 떠나 보니 세상사 모든 시름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되어 이제야 참 행복을 찾았다고 했다. 덧붙여 그는 떠남으로 오히려 가정이 제대로 회복되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와 아이는 도시에 남아 각자의 삶을 잘 꾸려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그와 달리 나 같은 중년들이 일시적으로나마 가정을 떠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시에서 시골로 들어오는 일도 버거웠는데 하물며 가족을 떠나 홀로 살아가는 데에는 분명 두려움이 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가치관도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갑자기 나는 도시에 살고 있는 친구, A가 떠올랐다. 결혼 후 여태껏 직장에서 돈을 벌다 작년에 퇴직을 한 그는 새 직장을 찾다 뜻대로 되지 않자, 그의 집 옥탑방에서 종일 술만 먹고 있다고 했다. 가정에서 경제적으로 용도 폐기된 그는 아침, 저녁에 밥 먹을 때만 아래층으로 내려가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인사조차 건네지 않는다고 내게 하소연을 하곤 했다. 그때 내가 그에게 혼자라도 시골로 내려오라고 했을 때 그는 주저했다. 물론 나와는 다소 다른 상황이지만, 나는 그럼에도 잠시나마 가족과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그 친구가 이해되었다.
그와 헤어진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곳에 눈이 많이 내렸다. 아침부터 집 앞의 눈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을 즈음에 아들이 다음 주에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내게 말했다. 얼마 전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반달 넘게 유럽에 다녀온 터라 내가 약간 짜증을 내자, 녀석은 “아무나 떠나는 게 아니라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자만이 떠날 수 있다”고 날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그날, 그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시골로 귀촌한 지 여섯 해가 지남에 따라 나는 이곳이 도시인지, 시골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처음에 품었던 꿈이 퇴색되었다. 자급자족을 꿈꾸었음에도 현실적 타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도시와 같은 소비행태를 영위했고, 지나치게 많은 사람을 만났으며 창작에 게을렀다. 이쯤 생각이 들자, 나는 그의 말대로 이 봄이 끝나면 어디론가 일시적으로 이곳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그곳은 더 깊은 산골일 수도 있고 바닷가 근처일 수도 있다. 그런 생각으로 한창 들떠있을 때 문득 이런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마다 승용차로 읍내학교에 등교시켜주는 중 2짜리 막내 딸아이는 어떻게 하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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