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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설화와 역사 /박은경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4-17 19:27:26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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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전북 익산 미륵사지의 서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 일부가 보물 지정으로 예고됐다. 이 사리장엄구는 미륵사지의 석탑 해체 조사 중이던 2009년 1월 14일 탑의 가장 아래쪽 심주석 위 사리공에서 발견됐다. 당시 금빛 찬란한 사리호를 비롯해 639년 절대연대를 가진 금판 그리고 청동합, 곡옥, 유리 및 금제 구슬 등 1만여 점의 유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발굴된 1만여 점의 유물 중 특히 이목이 쏠린 것은 사리기와 금판이었다. 몸체와 뚜껑에 연꽃과 당초문, 연주문 등이 화려하게 장식된 금동제 사리외호는 백제 공예예술의 정수였다. 더욱이 이 사리기와 함께 출토된 명문이 새겨진 금판은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밝혀줄 획기적인 기록유산이었다. 전문조사자에 의하면 세로 10.3cm, 가로 15.3cm, 두께 1.3mm의 크기의 얇은 금판에 음각으로 앞면 99자, 뒷면 94자의 명문을 각각 새겼다고 한다. 그 내용은 우리 백제의 왕후인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따님이 깨끗한 재물을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고, 기해년(639)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통해 이 금판은 일명 금제 사리봉영기로도 불린다.

금제 사리봉영기라 일컫는 금속문으로 말미암아 사택 가문의 딸인 왕후가 백제 무왕 40년 기해년(639)에 미륵사를 건립하고 탑을 조성 발원하였다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왕후의 출신도 알게 됐다. 즉, 백제 무왕의 부인인 왕후는 백제의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었던 것이다. 이에 학자들은 무왕 때 좌평 사택 가문은 왕후를 배출했고, 백제 의자왕 때는 대좌평을 지낸 사택지적이 있었음을 거론하면서, 사택 씨 가문이 백제 말기 권력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음을 언급했다. 적어도 좌평을 지낸 사택적덕은 왕실의 외척으로 백제 무왕의 치세기에 주요한 인물이었고, 딸의 사찰 조영에 후원자 역할을 했을 정도로 재력가였음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 사리봉영기 금석문이 발견되면서 역사학계에 새로운 논란이 야기됐다. 그 이유는 미륵사는 기존에 널리 알려진 삼국유사의 서동 설화에 등장하는 백제 무왕의 부인 신라 선화공주가 창건했다는 설화 때문이었다. ‘삼국유사’ 제2권 무왕조에는 서동 설화 속에 서동요가 전한다. 백제 무왕은 어린 시절 서동이라 불리었는데,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신라로 들어가 아이들에게 마를 주며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게 했다. 바로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이 노래가 퍼져 궁중에까지 알려지자, 왕은 마침내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 보냈다. 이에 서동이는 공주가 귀양가는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연을 맺게 되었다. 둘은 함께 백제로 돌아가서 서동이는 무왕이 되고 선화공주는 백제 왕후가 되었다는 스토리이다.

이어 이야기는 미륵사지 연기설화 또한 언급하고 있다. 하루는 무왕과 선화 왕비가 함께 사자사로 행차하던 중 익산 용화산 아래 큰 연못가에 이르렀을 때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왕비는 왕에게 이곳에 절을 세우기를 원하여,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불러 못을 메우고 불전과 미륵불상, 탑을 세우고 미륵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처럼 미륵사지 창건과 석탑 건립을 둘러싸고 두 여인의 등장에 해석이 분분했다. 즉, 서동요 설화의 선화공주와 새로 발견된 금판에 새겨진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이다. 연구자마다 여러 견해가 제기됐다. 일설에는 기존 설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바탕으로 백제 무왕이 후궁을 여럿 두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나아가 선화 왕비에 이어 사택적덕의 딸이 백제 무왕의 후궁이었을 가능성도 언급한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보이는 백제 무왕의 왕비인 신라 선화공주 이야기는 후대에 기술된 설화이다. 설화는 가감 왜곡되어 전해오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반면 미륵사지 서석탑에서 발견된 당시의 금석문은 설화가 아니다. 당시 기록을 바로 납입한 유물 사료이다. 명확한 1차 사료이며, 훨씬 더 신뢰성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를 포함해 과거의 역사유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와, 이에 대한 연구자들의 과도한 해석은 실로 잔인할 때가 있다. 그래서 매우 진중하게 역사의 실과 허를 가려야 할 것이다. 만약 사택적덕의 딸이 안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동아대 인문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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