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등학교 여자 동기생의 절반은 신발공장으로 갔다.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중학교로 진학시켰지만, 여자는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상급학교로 보내지 않았다. 물론 어려운 가정의 남학생들도 공장으로 가기는 했지만 여학생들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그 수가 적었다. 그로부터 십 수 년 후, 대학을 졸업한 남성의 월급이 30만 원이 될 때까지도 여성은 대기업에 서류조차 낼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하루 20시간 넘도록 일을 하는 공장의 근로만은 허락되었다. 임금 또한 대부분 3만 원을 넘지 못했다.

대구의 방직 공장에 다닌 다른 친구는 1만7000원을 받았다며 신발 공장에 다니는 친구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고 항의하거나 울분을 토하는 말이라도 했다가는 그 즉시 모두 빨갱이가 되어 끌려갔다. 살아내기 위해서, 주어진 삶을 어떻게든 감당하기 위해서 조장의 성추행은 일상이거니 생각하며 감내해야만 했다.

초년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과 달리 그들의 삶은 언제나 녹록지 않았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잠 설쳐가며 일해 공부시킨 오빠나 형이나 동생은 자신의 삶이 개비됨과 동시에 공장에서 뒷바라지한 누이나 형제들을 버렸다. 그래서 그 배신의 스토리는 수많은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고달팠던 시간은 오롯이 병마가 되어 살아내려는 의지와는 달리 안타깝게 생을 끝내게 했던 경우가 허다했다. 어찌어찌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살아냈다 해도 차라리 재앙에 가까운 노년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 가슴 아픈 기억 중의 하나로 각인되어 있는 장면은 월사금을 내지 못한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내쳐지는 광경이었다. 부모가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그들은 교실에서 쫓겨나야 했고 억울하게도 매까지 맞았다. 저리도 부당하게 내쳐지는 아이들이 바르게 살라는 선생님의 말을 어떻게 간수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나의 사춘기는 그렇게 초등학교 때 찾아왔다. 이후로 나는 늘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부채의식으로 떠밀려왔다. 또한 힘든 시간을 보낼 때마다 공장으로 간 그 아이들을 생각했다. 내가 도시락을 먹을 때 수도꼭지를 향해 달려가던 그들보다 더 암울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신히 중학교 진학을 했다고 해도 더 이상의 진학을 꿈꿀 수 없었던 친구들은 수업에 매진할 수 없었다. 다 쓰러져가는 천막 같은 집이나 비닐 깐 폐차에서 어린 동생을 보거나 집안일을 돕느라 무단결석을 밥 먹듯 했다. 그런데도 학교 선생님의 과외수업을 받아 이미 답을 다 아는 아이들과 함께 시험을 쳤고, 일등부터 꼴찌까지 성적 순위가 명시된 벽보를 보며 등교해야만 했다.

능력 없는 부모 탓에 홀대당한 세월 저편의 기억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을 텐데 평생을 시달리고도 여전히 팍팍한 현실은 그 기억들로 인해 더 서글플 것이다. 그리도 사력을 다해 달려왔건만 육십에 이른 나이에도 이렇게 삶의 고단함에 한숨 쉬며 허덕이게 될 줄 꿈에나 알았을까.

3만 원으로 부모 치료비며 동생 학비를 대느라 간장 하나로 끼니를 해결하며 버틸 때만 해도 언젠가는 나아지는 삶이 자신에게도 올 줄 알았을 것이다. 20대의 젊은이들에게도 희망퇴직을 권하는 세상인데 나이든 이가 갈 곳이 있을 리가 있는가. 그래서 그들은 젊은이들이 도저히 못 하겠다면서 나가버린 곳을 메우고 있다. 지난날이 개비되어 잘살게 된 이들은 공장에서의 시간을 수치스러운 일로 기억하며 숨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병든 몸이 되어 쪽방에서 간신히 연명만 하고 있다.

통계 수치에 의하면 강남은 이제 장수촌이 되어 있다. 그러나 쪽방의 그들은 평균 수명이 20년이나 짧다고 한다. 10년을 사는 집고양이와 1년을 사는 길고양이처럼 말이다.

재봉틀 앞에서 졸다 가피더미로 흘러내린 잘린 손가락을 찾지 못해 회사에서 잘렸다던 누이들도, 가죽을 자르는 프레스 기계에 손목이 잘려 회사에서 쫓겨난 가장도, 그렇게 착취해 축재한 재벌들로부터 이제는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시절의 수많은 남녀근로자의 희생에 감사한다며 그들의 재산을 내어 놓았다는 재벌에 대한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적절한 일자리가 있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소망 또한 이루어질 가능성 없는 헛되고도 헛된 망상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우리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근로자들의 고혈로 배를 불린 재벌들이 가면 너머의 흉악한 민낯으로 저지른 천박한 갑질이 온 세상에 알려지는 날이 온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너무도 요원해 보이던 내일이었다. 그렇기에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한다. 모두의 꿈은 더디기는 해도 반드시 변화된 세상을 이끌어오고야 말 것이기 때문이다.

동의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