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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칼럼] 납세자로서의 유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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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5-24 18:50:06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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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좋은 네거리 건물마다 2개 층 정도는 기본으로 가리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현수막이 펼쳐진 모습을 본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라는 뜻이고, 후보자는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는 데 최고의 수단이라 여기는 듯하다. 살짝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저마다 자신이 사는 자치단체 혹은 지방정부의 살림을 제대로 살고 살피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어쩌랴. 대개는 제집 살림 하나 추스르기도 벅찬데 그처럼 큰마음이라니 인품이나 능력도 남다를 것이라 치자. 다만 걸맞지 않은 공약과 구호로 목청을 높이는 데는 아무래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행정, 정치, 더 나아가 국가는 납세자의 세금으로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희망을 제시, 약속하는 것이 존재 이유이고 목적이다. 특히 이번 ‘6·13지방선거’로 선출할 기초·광역 단체장 및 의원은 그야말로 풀뿌리 살림살이를 제대로 살고 살피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사람들이다.

세금 소리를 하고 나니 문득 궁금해져 따져본다. 인세든 뭐든 수입에 따른 세금은 법이 정한 세율에 따라 원천징수하고 1년에 한 번 종합소득세로 납부하니 남들과 다를 바 없다. 그 밖에 주민세니 자동차세니 해서 수시로 날아드는 납부고지서도 역시 비슷하다. 그런데 세금은 날아드는 고지서의 그것뿐일까. 아니다. 기업이나 대단한 고소득자 아닌 대부분 국민은 수입보다 지출에서 내는 세금이 더 많다. 모든 거래와 구매에는 부가가치세, 교육세 등 여러 명목의 세금이 붙으니 말이다.

권장할 일은 아니지만 하루에 담배 한 갑을 피우는 경우를 계산해보자. 보통 4500원인 담배 한 갑에는 소비세, 교육세, 부가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등 3300원이 넘는 세금 또는 준조세가 포함되어 있다. 1년을 따지면 자그마치 120만 원이 넘는 액수다. 국민의 술 소주는 어떨까. 한 병을 1000원으로 가정했을 때 530원 정도의 세금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도 일반 소매점에서 구입할 때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식당에서 3000, 4000원을 지불하고 마시는 경우라면 1000원 더 많아질 것이다.

심심파적 계산이었지만 우리는 참으로 다양하고 엄청난 액수의 세금을 내고 사는 것이다. 게다가 대여섯 살 먹은 아이가 1000원 권 한 장을 들고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과자 한 봉지를 사도 부과된 세금을 피할 수 없고, 주검이 되어서 입는 수의에도 세금은 포함되어 있을 테니 평생을 조밀한 세금의 그물 속에서 사는 것이다. 참 대단하고 집요한 능력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소득세 낼 형편이 아니더라도 납세자로 당당할 수는 있는 것이다.

어쨌거나 법으로 정한 세금이니 굳이 과중하고 가혹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렇지만 평생을 그처럼 지독하게 걷어간 세금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고 희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때는 억울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고, 헛돈이나 낭비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하지만 국가나 자치단체는 이름만 있을 뿐 실체는 없는 것이니 나라 살림을 대신하는 사람에게 물어야 하는데 지금껏 살림살이에 대한 책임으로는 무릎 꿇는 사람조차 본 적이 없다.

부산을 직접 거론하는 것은 코앞인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서울을 사례로 자치단체의 살림살이 하나를 따져보겠다.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 일단 봄이 오면 매년 새로 잔디를 깐다. 최소 수억 원은 들어간다. 그런데 채 뿌리도 내리기 전에 한반도 모양이다 어쩐다 하면서 수시로 잔디를 걷어내기도 하고 다시 깔기도 한다. 거기다가 무슨 장터는 그렇게도 여는지 수시로 천막을 치고 걷고, 행사를 연다며 무대를 세우고 치우고, 그런 뒤에는 또 잔디를 보강하고…. 마침내 겨울이 오면 스케이트장을 만드니 어쩌니 하며 홀랑 걷어내는데, 연간 최소 수십억 원은 들 것 같고 매년 반복이다. 잔디 생산자나 조경업자에게는 경제행위이겠지만 순수 납세자 입장에서는 피 같은 세금의 낭비도 아닌 탕진이라는 생각이다.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자연 그대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정이 깊어지는 모두의 광장으로 편안하게 찾을 수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만족하지 않을까. 행사에 필요한 광장이라면 교통체증까지 고려한 다른 마땅한 곳에 조성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무엇보다 그런 비효율적인 낭비의 속내가 ‘소통’이라는 이름의 ‘쇼(show)’이거나 무슨 치적처럼 포장한 얄팍한 눈속임이라면, 세금의 주인은 두 눈을 번쩍 떠야 한다. 훈풍이라는 남북 간의 아슬아슬한 바람 속에 이번 지방선거판도 들썩거리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과 그 희망을 외면하거나 거부하려는 뜻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는 것 같던 화려한 애드벌룬은 정체 모를 북풍 한 줄기에 파르르 떨고 있다. 다시 판이 뒤집어지기도 쉽지는 않겠지만 살얼음을 걷어내고 뱃길을 내거나 다리를 놓으려면 앞으로 무수한 고비를 넘어야 할 것이다.

너무 화려하게 펼쳐지는 무대여서 환호는 컸지만 불안도 컸다. 핵과 미사일을 걷어내는 그 엄중한 대사가 쇼 같은 무대로 성사될 수는 애초에 없었다. 이제 과한 이벤트의 환상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신중해야 한다. 더군다나 지방정부는. 평양 서울사무소 이야기도 나오고 북한 수학여행 소리도 나온다. 앞서가도 한참 앞서간 소리고 치적으로 서둘러 실행하려면 미사일처럼 세금을 퍼붓고도 성사를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먼저는 중앙정부의 성과를 기다려야 한다. 성과가 나오면 그때 효율적으로 동참하고 지방 살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과 방법을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 어물전 꼴뚜기처럼 날뛰어서는 중앙정부의 신중함에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탐욕스러운 패거리에게 맥없이 뜯기기만 할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 청년과 노인, 장년의 삶에 당장 활로를 터주고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 시급하다.

   
네거리 현수막에 얼굴 내놓은 사람 중에서 옥석을 가리는 일은 투표장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살림살이를 정치로 여기고, 쇼를 치적처럼 내세울 사람부터 가려내야 한다. 피 같은 우리의 세금을 허투루 쓸 부패와 무능도 밝은 눈으로 솎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쇼에 취한 감성을 냉철한 이성으로 돌려놓는 냉정이 우선 필요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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