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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한여름의 몽상: 부산의 다리들이 가리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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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8-09 19:06:0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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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적시며 시내를 건너던 아이가 어느 날 돌을 몇 개 가져다 징검다리를 놓았다. 여기저기서 발을 담그며 시내를 건너던 사람들은 징검다리를 건너기 위해 그쪽으로 길을 갔고, 다리를 건너서 새길을 가 버릇했다. 그리하여 징검다리를 중심으로 시내 양편에 소로가 나기 시작했다. 다리가 길을 나게 한 것이다. 작은 문명이 시작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다리는 문명 발달 및 확산과 밀접하다. 고대 로마는 다리를 놓아 문명의 길을 닦은 역사적 사례를 잘 보여준다. 로마 사람들의 말인 라틴어로 다리는 ‘폰티스(pontis)’이다. 이 말은 지금 여러 유럽 언어의 어원이 되었다. 라틴어 폰티스는 인도유럽어족의 태곳적 기원에서 유래하는데 현재 중동의 여러 언어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경우라도 그 본질적 의미는 ‘길’이라는 사실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모든 곳으로 통하는 길, 곧 소통의 탁월함 그 자체로서의 길, 그것은 뱃길이었다. 그리스문명은 에게해의 수많은 곶과 섬으로 된 지역에서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천연의 바다를 펠라고스(pelagos)라고 불렀지만, 뱃길이라는 의미의 바다는 폰토스(pontos)라고 불렀다. 폰티스와의 어원적 유사성을 보라.

로마 사람들에게 가장 탁월한 길은 바로 폰티스, 곧 다리이다. 다리는 길들을 이어주기도 하지만, 자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길들을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로마 원정 군단은 어디를 가든 다리를 건설했다. 그들이 건설한 다리는 군사 목적에도 이용되었지만, 무엇보다도 문명의 전파를 위한 위대한 길들을 잇고 또한 새롭게 탄생시키는 역할을 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저 유명한 경구에는 길로써 다리의 핵심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인간은 분리를 인식함으로써 연결을 실행한다. 정신으로 분리의 의미를 깊이 새김으로써 행동으로 연결의 실천을 모색한다. 징검다리를 놓았던 아이는 매번 시내를 건널 때마다 자신이 반복하는 행동으로 시내의 양안을 연결하면서도 분리를 실감했다. 그리하여 아이는 연결의 지속성을 갈구하게 되었다. 다리는 고정된 형상으로 연결의 지속성을 보장한다. 동시에 떨어져 있는 양안을 분리로부터 조화와 공존의 차원으로 이끈다.

철학자 게오르크 짐멜은 “자연의 동물들과는 달리 오로지 사람에게만 연결하거나 해체하는 능력이 주어졌다”고 한다. 인간은 물질적이든 상징적이든 매 순간 결합된 것을 분리하고 분리된 것을 결합하는 존재라고 한다. 동물은 길 또는 다리라는 ‘기적’을, 즉 움직이는 행위들을 하나의 고정된 형상으로 수렴하는 기적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사람은 징검다리를 놓은 아이의 경우처럼 반복된 행위에서 나온 욕구를 형상으로 승화한다. 여기에 이어지는 행위들, 곧 다리를 건너는 행위들은 다시 그 형상에 수렴된다.

인간 정신은 화해하고 결합함으로써 분리를 극복한다. 분리된 것은 실용적 목적에 따라 연결될 뿐 아니라, 그 연결은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미학적 가치를 획득한다. 우리가 무지개를 지고의 아름다운 다리의 상징으로 삼는 것은, 무지개가 이 세상의 모든 분리를 한꺼번에 감싸 안는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다리는 그 미적 형상이 품고 있는 철학적 의미로 인해 독특한 예술 작품이 된다.

짐멜은 다리가 여타 예술 작품과도 다른 점이 있음을 간파한다. 다리는 자연을 넘어서는 인공적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자연 풍경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풍광 속의 다리를 자연의 그림 같은 요소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다리는 자연에 귀의한 인공인 것이다. 이것이 다리의 미학적 역설이다. 다리는 자연과 함께 창조적으로 진화하는 인간 능력의 미적 승화이다.

그런데 징검다리를 건너던 아이가 돌연 몸집을 부풀리더니 마치 소인국에 온 걸리버처럼 부산의 다리들을 따라 성큼성큼 걷고 있는 것 아닌가. 해안선을 따라 연결된 광안대교~부산항대교~남항대교~을숙도대교~신호대교~가덕대교를 따라 걷다가 어떤 섬 앞에 우뚝 멈춰 선다. 가덕도다. 무더위에 지쳐 오수에 깊이 빠져 있던 나는 잠에서 깨어 이 희한한 ‘낮꿈’을 복기해본다.
부산의 다리들이 가리키는 ‘길’이 가덕도라. 새로운 문명의 길로 가라고 가리키는 것이 가덕도인가. 다리는 새로운 길을 나게 한다. 새로운 차원의 문명 발전에 추동적이다. 부산의 다리가 가리키는 길이 새로운 하늘길에 대한 암시인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꿈 깨라고 하겠지만 꿈의 해석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데 참고 자료 아니겠는가.

오밀조밀한 해안을 따라 부산의 다리들이 있다. 꿈에서 본 다리들에 거가대교를 더해 일곱 개의 다리는 ‘레인보우’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미래 도시의 인프라를 위해 대부분 2000년대 들어서 완공한 것들이다. 지어질 때 많은 비판을 받았던 다리들도 있다. 나의 ‘다리 예찬’이 작은 위안이 될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과거를 향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것이다. 부산의 주요 다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길’을 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남권 관문공항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일부 언론은 6월 지방선거 이후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이슈가 된 것은 전적으로 여권의 정치적 셈법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의 영역 모두를 아우르는 총체적 이슈였다.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이 나지 않는 한 계속될 논쟁거리다. 문명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나는 공항 입지에 문외한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완벽한 결정은 없다는 사실이다. 이에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의 말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어차피 완벽한 결정이란 것은 없다. 그래서 나는 훌륭함보다 속도를 택했다. 물론 틀릴 수도 있지만, 이는 그다지 뼈아픈 일이 아니다. 오히려 늦는 것이 치르는 대가가 더 크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제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기존 입지에서의 건설은 지지부진하고 그 대안은 논쟁거리로만 남는 상황이 지속되어선 안 된다. 문명적 차원에서 새로운 길을 갈지 또는 가지 말아야 할지 뜻을 모아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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