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는 것을 때론 ‘문안 올린다’고 해야 한다. 문인이자 사학자인 최남선(1890~1957)이 그랬다. 그는 1927년 7월 24일부터 8월 7일까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탐사한 뒤 그 보고서에 ‘백두산 근참기(覲參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근참은 높은 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 뵙고 인사한다는 뜻이다. 최남선에게 백두산은 경배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한민족이라면 예외가 없을 터이다.

최남선의 백두산 탐사 보고서를 보면, 그가 왜 근참이라 명명했는지 알 수 있다. “둘레가 7~8리에 파란물이 잠자는 듯 고요한데, 바람구멍 숭숭 뚫린 화산석이 부서져 만들어진 백사장 밖으로 나직나직한 잎갈나무 숲이 병풍처럼 에두르고….” 그는 백두산 중턱의 드넓은 ‘하늘들(天坪·천평)’에 펼쳐진 3개의 에메랄드빛 호수 ‘삼지연’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호수 위에는 흰비단을 풀어놓은 듯한 안개까지 바람에 하늘거리니 선경이 따로 없다.

삼지연의 아름다움은 홀로 이뤄진 게 아니다. “장군 간백 소백 포태 등 7000~8000척의 높고 험한 산들이 멀리서 (삼지연을) 둘러싸고 깊은 숲이 끝없이 터져나가 웅장하고 호쾌한 갖은 요소를 다 드러내 보였으니, 삼지연의 아름다움은 다시 몇 백배의 가치를 더하여 아무 데서도 볼 수 없는 천하의 독특한 지위를 얻었다.” 삼지연의 절경을 백두산 준봉들과의 조화에서 찾은 최남선의 심미안이 돋보인다. 백두산에는 해발 2500ｍ가 넘는 봉우리 27개가 솟아 있는데, 그 가운데 장군봉(2750ｍ)이 가장 높다. 삼지연은 준봉들을 그림자로 비추고, 준봉들은 삼지연을 넉넉히 품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어제 오전 삼지연과 장군봉을 거쳐 천지에 올랐다.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남북 정상의 정성을 하늘이 가상히 여긴 게 아닌가 싶다.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천지는 접근 자체가 어려운데 소원을 이뤘다니 말이다. 한반도의 미래에 서광이 비치는 느낌이다. 두 정상의 백두산 등정 소식이 전해진 뒤 남측에서는 김 위원장의 한라산 방문 추진 움직임이 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은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 때 한라산에 모실 수 있도록 도민과 함께 적극 노력하겠다”고 했다. 꼭 성사되리라 믿는다. 4·27 파종이 9·19 결실로 이어졌듯이, 평화공존의 바다로 흐르는 민심의 도도한 물결을 누가 막겠는가.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