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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디지털은행 시대’, 넋 놓고 있을 수 없다 /이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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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10-07 18: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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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자동차나 부동산 매매를 중개한다면 어떨까? 전자상거래 기업인 중국의 알리바바나 일본의 라쿠텐 그룹이 결제, 송금, 예금 등 은행 업무를 취급하고 있다면 은행도 전자상거래 비즈니스를 한다고 해도 굳이 이상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은행과 일반 산업 간에는 ‘은산분리’의 벽이 존재해 왔다.

싱가포르 최대 은행인 DBS은행은 이 벽을 허물고 2017년부터 인터넷을 통한 자동차 매매 중개 서비스를 시작했다. 중고차 가격 평가와 매매 물건 검색뿐 아니라 대출, 보험의 신청, 자동차 관련 용품 구입까지 한꺼번에 제공한다. 이어 부동산 중개와 전력신청 사이트도 개설했다. 부동산에는 매매·임대 물건, 대출조건 외에 이사, 인터넷·TV 신청, 리모델링 의뢰 등의 서비스까지 제공할 예정이다.

DBS은행은 시가총액이나 수익 규모 면에서 동남아시아 최고이다. 이런 은행이 왜 생뚱맞아 보이는 신사업을 추진하는 것일까? DBS은행의 본래 명칭은 싱가포르개발은행(Development Bank of Singapore)이다. 창업 50주년을 맞아 DBS은행의 머리글자인 ‘D’를 ‘개발(Development)’이 아닌 ‘디지털(Digital)’로 바꾼다고 선언했다. 과거 개발연대 시절, 은행의 주된 임무는 산업자금의 원활한 공급이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소비자에게 안전하고 편리한 금융서비스의 신속한 제공으로 바뀌었다. 바야흐로 ‘디지털 은행’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은행은 자금 알선에 머물지 않고 관련 모든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제공하는 마켓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전 세계가 초고속 통신망으로 연결되고,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각종 은행 서비스가 이제 손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휴대전화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은행 관련 업무를 볼 수 있다. 게다가 결제, 송금 등 서비스 이용료도 무료에 가깝다. 변화에 불을 댕긴 것은 쉽게 돈을 주고받는 간편결제 서비스 페이를 개발·보급한 ICT 전자상거래 업체들이었다. 여기에 인공지능, 블록체인, 디지털 화폐 등의 신기술로 무장한 핀테크 기업들이 가세하면서, 스마트폰이 곧 은행인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디지털 은행의 시대’, 은행의 경쟁력은 ‘정보’에 있다. 국내 인터넷 포털기업인 네이버는 일본에서 라인(Line)이란 모바일 메신저 사업을 하고 있다. 일본 라인은 2014년 간편결제 서비스인 라인페이 서비스를 선보인 이후, 노무라증권, 손해보험재팬, 신용카드회사인 JCB 등 금융기업들과의 제휴를 통해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라인은 가상통화 교환도 가능하며 중소점포에 수수료 없이 QR코드로 결제하는 앱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의 라인은 아직 은행 면허가 없지만 대형은행들은 라인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UFJ은행의 예금계좌 수는 4000만 개에 불과하지만 라인의 이용자 ID 수는 7500만 개에 달한다. 이용자 ID는 바로 계좌로 바뀔 수 있는 폭발력이 있기 때문이다.

또 라인의 주 수익원은 고객정보에서 나온다. 풍부한 고객정보를 바탕으로 한 광고 수입으로 무료 송금 등 다양한 금융서비스가 가능하다. 반면 은행의 주 수익원은 대출과 예금 이자율의 차이인 예대마진과 각종 송금, 환전 등에 따른 수수료 수익이다. 은행은 이를 위해 전국 각지에 영업 지점망과 현금인출기(ATM)를 촘촘하게 깔아 놓고 영업하고 있다. 디지털 은행의 시대, ‘손안의 은행’은 기존 은행의 고비용 인프라를 한순간에 불필요하게 만들 수 있다.

‘디지털 은행’으로 변신하려면 먼저 정부가 규제의 벽을 헐어야 한다. 핀테크 확산에 적극적인 싱가포르 금융당국은 2017년, 은행이 비금융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그 결과, DBS은행은 사업모델을 다양화시킬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IT·유통 등 비금융기업도 은행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제를 과감히 풀었던 일본 정부는 이번에 은행의 비금융업 진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 금융당국도 핀테크 기업에 전국 은행 면허를 내주겠다고 발표했다. 은산의 문제는 철저한 관리·감독으로 풀고 규제 완화에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전문기업에게만 은행 경영의 일부 참여를 허용하고 있다. 금융의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직, 우리 금융이 ‘디지털 은행’으로 갈 길은 멀다. 변화의 흐름에 우리만 넋 놓고 있을 수 없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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