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미국 뉴욕법원 판사 피오렐로 라과디아(1882~1947)는 한 빈민 노인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것에 대한 처벌이었다. 그는 이어 자신과 방청객들에게 각각 10달러와 50센트씩의 벌금형을 선고하며 달갑게 받아들일 것을 당부했다. “우리 역시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노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은 책임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 그렇게 모은 돈은 모두 57달러50센트. 그는 벌금 10달러를 제외한 나머지를 노인에게 줬다. 미국 법조사에 전설로 남은 명판결이다.

라과디아는 1933년 뉴욕시장에 당선된 뒤에도 실업보험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공화당원인 그가 민주당 출신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복지 강화 등을 골자로 한 뉴딜정책을 발표하자 성명을 통해 지지한 건 유명한 이야기다. 공화당 내 그의 별명은 ‘골칫거리’였지만, 시민들은 그를 ‘작은 꽃’이라고 불렀다. 150㎝ 단신인 복지시장에 대한 애칭이다. 그는 불의에도 당당히 맞섰다. 암흑가 보스 루치아노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마피아들을 잡아들이고, 그들의 주 수입원인 슬롯머신(도박기기)을 없애버렸다. 법과 원칙에 충실했던 판사 경험이 그 밑바탕이었다.

정의를 구현하려면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키브 니사르 파키스탄 대법원장이 그랬다. 지난달 31일 그는 1· 2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기독교도 여성 아시아 비비(47)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비비는 2009년 무슬림 이웃들한테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욕했다는 누명을 쓰고 지금까지 옥살이를 하고 있다. 니사르는 “무함마드가 ‘비무슬림에게 친절히 대하라’고 말했다”며 종교적 관용을 강조했다. ‘목숨을 건 판결’이었다. 2011년 파키스탄 펀자브 주지사와 소수자 담당장관이 비비에게 동정을 표시했다가 살해당한 바 있다. 이번 판결 후에도 이슬람 강경주의자들이 전국에서 들고 일어나 비비와 니사르의 사형을 요구하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들의 압력에 밀려 지난 4일 결국 비비에 대한 재심을 수용하고 말았다.

니사르의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 의혹과 대비된다. 니사르는 살해 위협을 무릅쓰고 진실을 밝힌 반면, 양승태 대법원은 상고법원 설치와 법관 해외파견 등 조직 이익을 위해 재판거래를 하며 진실에 눈감았다. 니사르 판결에서 ‘양심 사수의 집념’을 본다. 양승태 대법원이 방기한 가치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