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물갈이는 어려웠다. ‘혹시나’했더니 ‘역시나’였다.

자유한국당이 ‘물갈이’를 위해 영입한 전원책 조직강화특별위원을 해촉했다. 불과 한 달 전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넘어선 ‘십고초려’해서 모셔왔다”던 전원책 변호사를 문자 한 통으로 잘라버렸다.

한국당이 ‘절체절명의 위기’라면서 위기 탈출을 위해 모셔온 전 변호사를 스스로 용도 폐기한 것이다. 현역 의원 95명을 포함한 253명의 당협위원장 전원에게 사표를 받아놓고 시작한 조강특위 활동이 시작과 동시에 와해위기를 맞은 셈이다. 당 혁신 작업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김병준 위원장은 “인적 쇄신은 오는 2020년 총선까지 길게 갈 수밖에 없다”고 한 발 물러섰다. 물론 조강특위 활동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용두사미’가 될 결말은 벌써부터 눈에 보인다. 결국 물갈이는 다음 당 대표에게 넘겨야 될 판이지만 문제는 계파수장으로는 불가능한 과제다.

결별의 표면적인 이유는 전당대회 개최 시점을 둘러싸고 김 위원장(내년 2월 말)과 전 변호사(내년 6~7월)의 견해차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인적 쇄신의 범위를 둘러싼 갈등이다. 김 위원장은 전 변호사를 영입했을 당시 “전권을 위임하겠다”고 밝혔으나, 막상 전 변호사가 혁신의 칼을 빼들자 칼을 빼앗아버린 형국이다. 결국 두 사람은 ‘막말성 공방’까지 주고받으면서 결별했다.

전 변호사는 “개혁을 거부하는 정당”이라고 독설을 던지면서 당을 떠났다. 그는 “내년 2월 전당대회를 하려면 다음 달 15일까지 현역 의원을 잘라야 하는데 (정기국회 일정을 감안하면) 누가 봐도 불가능하다. 결국 인적 쇄신을 못하겠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전 변호사는 보수 본류 정당의 생존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며 기자회견을 통한 폭로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번 비대위와 조강특위의 활동을 인내의 ‘마지노선’으로 생각해온 보수 지지층에서는 “더 이상은 희망이 없다”면서 건설적 해체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때맞춰 당내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논쟁이 재연되면서 ‘친박 대 비박’ 싸움을 시작했다. 특정인을 겨냥해 ‘개 짖는 소리’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당이 없어져도 끝나지 않을 ‘답이 없는’ 탄핵논쟁이 가세되면서 한국당의 신뢰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

정권을 견제해야할 제1 야당이 본업은 팽개치다시피 해가면서 집안싸움에 몰두해도 될 만큼 정치상황은 한가하지 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등 경기 하향 위험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생산 소비 투자 등 경제관련 주요 지표들이 모두 곤두박질을 치고 있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대표 석학들이 내놓은 ‘2019 경제 대전망’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고실업·재정 트릴레마’를 경고했다. 남북관계 가속으로 한미 동맹에도 위험 신호가 곳곳에서 켜지고 있다. 미중 분쟁으로 우리나라는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퇴진을 앞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경제위기라기보다 경제에 관한 의사결정의 위기”라고 청와대를 겨냥하는 듯한 발언을 했어도 제1 야당은 속수무책이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한결같이 한국경제의 경쟁력에 대해 우려와 경고를 내놓고 있음에도 청와대는 ‘근거 없는 위기론’으로 일축하고 있다. 기업이나 시장분위기, 통계지표가 보내는 적신호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인식이다. 하반기쯤이면 소득주도 성장의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연말이 가까워오자 “내년에 실질적 성과를 국민들이 체감할 것”이라고 슬그머니 내년으로 체감시한을 미뤘다.

청와대는 여전히 “한국경제는 별 문제 없다”고만 외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소득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 정책에 대한 중단 없는 추진을 재확인했다. 경제부총리와 정책실장을 바꾸었지만 “경제가 뭐가 문제인데”라는 인식으로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기존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방침이 확고한데 부총리·정책실장을 교체한다고 달라질 게 있을 리가 없다.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갖가지 의혹으로 국회에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조명래 환경부 장관에 대한 임명도 강행했다. 과거에 대한 적폐 청산은 집권 2년 차에도 가열차게 추진되고 있다.

한마디로 청와대가 국정을 완전히 거머쥐고 군림하고 있다. 국회는 물론이고 사법부까지 좌지우지하려 한다. 이미 야당은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자업자득이다. 제1 야당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청와대와 여당의 독주·폭주는 불 보듯하다. 그런데도 야당은 한 줌도 안 되는 내부 권력 투쟁에 도끼 자루가 썩는 줄 모르고 있다.

서울본부장·정치부장 thrk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