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밖에 안 나온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국회의 모습이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국회가 야당의 정기국회 일정 전면 보이콧으로 아예 멈춰 섰다. 이 때문에 민생에 직결된 90여 개의 법안은 무더기로 방치되고 나라 살림살이 심의까지도 표류하고 있다. 게다가 꼬일 대로 꼬인 정국은 여야의 강 대 강 대치로 더욱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국회 공전이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에 이어 바른미래당은 20일 정기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했다. 야당의 명분은 공공기관 고용세습 국정조사 수용이다. 이에 여당은 ‘선 감사원 감사, 후 국조 검토’로 맞서고 있다.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대치하면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물론 각종 민생법안 심사는 ‘올스톱’됐다. 당장 여야가 연내 처리에 합의한 음주운전 처벌강화법, 일명 ‘윤창호법’은 행정안전위원회의 심사 자체가 무산됐다. 세법 심사(기획재정위), 사립유치원의 부정을 근절하기 위한 ‘유치원 3법’(교육위), 아동수당 지급대상 100% 확대를 담은 아동수당법 개정안(복지위)은 논의도 못 하고 있다.

예결위 예산 소위는 아예 구성조차 못 한 채 허송세월이다. 예결위는 당초 지난 15일부터 예산 소위를 가동해 예산안 감액·증액 심사에 나설 예정이었다. 새해 예산안 본회의 처리 법정시한은 다음 달 2일이다. 법정시한을 준수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설사 예산 소위가 구성된다고 해도 ‘벼락치기’ 심의는 불을 보듯 뻔한 양상이다. 470조 원이 넘는 ‘슈퍼 예산’을 꼼꼼하게 챙겨보기에는 물리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

정기국회 파행의 쟁점이 된 고용세습 의혹은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게 맞다. 필요하면 국정조사라도 해서 진상을 규명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국정조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국회 일정을 거부하면 국회가 권한과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산안 심의와 민생법안 심사를 대여 투쟁의 볼모로 하면 국민의 분노만 사게 된다. 여당도 ‘선 감사원 전수조사’만으로 맞서지 말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파국이 아니라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내는 게 정치력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