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도시에는 언제나 밥그릇이 많다. 동서고금이 똑같다. 특히 대기업 같은 큰 밥그릇이 많다. 그러니 사람이 모일 수밖에. 사람이 많으면 식당도, 병원도, 학원도 있어야 한다. 밥그릇은 더 늘어난다. 사람이 많이 살면 살 집이 문제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면 집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중심에서 좀 떨어진, 땅값이 싼 곳에 택지를 조성한다. 이것이 신도시다. 신도시는 공원 학교 병원 등 인프라가 거의 완벽하다. 인프라의 핵심은 역시 도로다. 전철과 도로 등 잘 갖춘 새 길은 도시의 가치를 높인다. 잡은 것처럼 보이던 집값은 다시 오른다. 사람이 또 몰려드니까.

대한민국의 밥그릇은 서울에 많다. 정치 행정은 물론이고 기업 본사도 대부분 서울에 있다. 먹을 게 많으니 서울로 사람이 모인다. 집은 부족하고 가격은 폭등한다. 그래서 만든 게 신도시다. 1989년 계획된 1기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는 서울의 베드타운 성격이 강했다. 노무현 정부가 2003년 발표한 2기 신도시(경기 김포, 인천 검단, 화성 동탄1·2, 평택 고덕, 수원 광교, 성남 판교, 위례, 파주 운정 등)는 자족 기능을 강화했다. 대규모 산업단지까지 배치했다. 신도시 때문에 서울은 경기도로 넓어졌다. 이제 대기업의 75%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인구도 절반 이상이 모여 산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는 비수도권의 밥그릇도 챙겨줬다. 바로 국가균형발전 정책이었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란 성과를 거뒀다. 노무현 정부는 기득권층의 격렬한 반대에도 2005년 6월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을 만들었다. 그때 뚝심 있게 밀어붙인 총리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이 대표는 당시 실세 총리로 ‘밥값’을 제대로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덕분에 대상기관 153개가 지방 이전을 완료했다. 공공기관 주변에 혁신도시라는 신도시도 만들어졌다.

이런 이 대표가 집권 여당 대표로 취임했다. 비수도권의 기대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9월 국회 대표 연설에서 이른바 ‘혁신도시 시즌 2’를 밝혔다.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중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라 이전 대상이 되는 122개(약 6만 명)를 적합한 지역에 추가로 옮기기 위해 당정 협의를 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역시 ‘이해찬’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여준 승부사의 기질이 오버랩됐다. 남북문제 외에는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평가를 받던 ‘문재인 정부’가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절묘한 카드로 보였다. 정부와는 상당한 교감이 있었을 것이란 기대감도 들었다.

그런데 웬걸. 정부가 최근 발표한 것은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이었다. 그것도 서울에서 불과 2㎞ 내에. 경기도 남양주 하남 과천, 인천시 계양 등 4곳에 12만2000가구를 조성하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놀라운 것은 서울 접근성, 정확히 말해 강남 접근성에 대한 대책이다. 바로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건설이 핵심이었다.

근데 이 GTX란 것이 신기하다. GTX는 지하 40∼50m의 공간을 활용해 노선을 직선화하고 평균 시속 100㎞로 운행하는 고속 지하철이다. 기존 수도권 전철이 지하 20m 내외에서 시속 30∼40㎞로 운행되는 것보다 배 이상 빠르다. 목표는 서울 중심까지 30분 이내 도달. 노선은 파주 운정~화성 동탄(A노선) 송도~서울역~마석(B노선) 양주 덕정~수원(C노선) 등 3개로 총 237.3㎞다. 무려 13조9000억 원이 든다. 건설되면 경기도 대부분에서 서울 출퇴근이 가능해진다. GTX 때문에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벌써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유다. GTX는 사람을 끌어모으는 블랙홀이 될 것이다. 서울은 더욱 확대되고, 메가 수도권이라는 새로운 중심부의 탄생이 예상된다. 수도권의 집값은 크게 오르고 비수도권과의 격차는 심화될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비수도권의 밥그릇은 어떻게 챙겨주겠다는 얘기가 안 들린다. 오히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취임 간담회에서 “(공공기관 추가 이전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국토 균형발전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먹고살 게 적은 곳에 사람이 절대로 모여들지 않는 것은 진리다. 지금 비수도권 실정이 그렇다. 앞으로 30년 내에 3500개 읍·면·동 중 40%가 없어진다는 진단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책이어야 한다. 그래서 아직은 이 대표의 말을 믿으려 한다. 실세 대표가 아닌가. 이 대표는 비수도권의 곱지 않은 여론을 의식한 듯 최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제2의 공공기관 이전을 잘 준비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정책을 조율하는 과정이라는 말로 해석하고 싶다. 이 대표가 힘을 좀 더 냈으면 한다. 파이팅!

논설위원 sbj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