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 겨울이 깊다. 마당의 모과나무 가지는 앙상하다. 집 뒤 오솔길을 산책하노라면 칼바람에 얼굴이 시리다. 지난 연말 어미 잃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몇 번 먹이를 줬더니 낮 동안 녀석은 아예 현관 앞에 웅크리고 있다. 해가 떨어지면 바람을 피할 비닐하우스 쪽으로 이동한다. 녀석은 배고프면 울고 추우면 따뜻한 곳을 찾는 생존 본능이 있다. 사람인 나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영혼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정도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새해에도 열풍이다. 이 영화는 1971년 결성된 영국 밴드 ‘퀸’의 이야기다. 필자가 기억하는 ‘퀸’의 노래는 1977년 발표한 ‘We are The Champion’이다. 그때 중 3이었는데, 당시 그들의 노래를 듣고 시큰둥했다. ‘퀸’말고도 ‘사이먼 앤 가펑클’ ‘비지스’ ‘마돈나’ 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퀸’하면 합창으로 부르던 열정적인 무대와 프레디 머큐리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기억이 난다. ‘퀸’ 음악의 장르가 프로그래시브 록, 글램 록, 하드 록, 헤비메탈인 것은 최근에 알았다.

40년이 지난 지금 왜 ‘보헤미안 랩소디’인가. 여기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나는 이 현상이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K팝 가수에 대한 피로감이라 말하고 싶다. 이제 대중은 아이돌 가수의 현란한 율동과 춤을 원하는 게 아니라 가수와 함께 느끼고, 그들과 같이 부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대중의 자유와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팍팍한 현실에서 힘도 없고 배경도 없는, 도대체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대중은 노래를 통해 이곳이 아닌 저 너머를 보고 싶은 것이다.

최근 노랫말을 만드는 전문가 사이에서 K팝 노래 중 작사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노랫말의 지나친 상업화에 따른 부작용이다. 비문학적 단어의 열거, 무분별한 영어 삽입, 랩의 활성화로 비속어나 음란어 사용이 빈번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 더는 주옥 같은 노랫말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예전엔 얼마나 아름다운 노랫말이 많았나. 조용필의 ‘킬로만자로의 표범’, 정태춘의 ‘북한강에서’,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등 이루 셀 수가 없다.

1990년대 초 ‘서태지와 아이들’과 ‘H.O.T’가 잇따라 나오면서 시작된 K팝은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 기존과 다른 음악을 갈구했다. 대중음악 원래의 기능인 ‘듣는 것’에서 ‘보는 음악’이 도입돼 아이돌이 등장해 블랙뮤직과 만나고 힙합 문화의 수용이 이뤄졌다.

문화사회학자 김성민 교수는 방탄소년단(BTS)의 예를 들며 그들은 선발부터 데뷔까지의 여정, 안무 연습 과정을 등을 유튜브에 공개하고 팬들과 SNS로 소통하며 팬덤을 구축해 자신의 서사와 경험을 노래와 퍼포먼스 속에 녹여내 팬들과 감정의 공동체를 이뤘다고 평가한다. 따라서 지금의 K팝 아이돌은 과정과 스토리를 공유하는 동시대의 팝스타라고 단정했다. 좋다. 지금까지는 그들의 순기능이 적지 않다. 그들의 시장이자 주류고객인 10대들은 당연히 그리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10대와 K팝에 매몰된 일부 세대를 빼고 대다수 대중가요 수요자이다. 그들은 놀랍게도 20대부터 60대까지 광범위하게 걸쳐 있고, 이제 더는 K팝 아이돌 음악을 원하지 않는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관객도 이들이다. 아! 여기서 일단 BTS는 제외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 2짜리 딸아이로부터 내 관심과 사랑을 빼앗아간 원흉이지만 그들의 팬클럽 ‘아미’가 너무 막강하기 때문이다.

산골에서 농사나 짓고 글이나 쓰지 뭣 하러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하나 라고 말씀하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구태여 변명하자면 영화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이 현상을 예견하고 발표한 내 첫 앨범 ‘보헤미안 영혼을 위한 여덟 곡의 랩소디’가 막상 영화가 나왔음에도 별다른 연관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딸아이의 방에는 내 앨범의 재킷 사진 대신 잘생긴BTS의 사진이 걸려 있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