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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진 칼럼] 삼일정신을 다시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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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9-02-28 20:08:3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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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영화 ‘박열’을 봤다. 박열은 18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흑도회’ ‘흑우회’ 등 항일 사상단체를 이끌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가 자국 내 소요를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자행했던 6000여 조선인 학살의 과정 속에서 박열은 천황을 폭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구속된다. 천황제도와 군국주의에 반기를 든 자유여성이자 아내였던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했던 박열의 옥중 투쟁은 결국 사형선고에 이르게 했고, 영화도 그 즈음에 막을 내린다. 박열의 삶은 계속된다. 무기형으로 감형된 박열은 22년2개월이라는 긴 수감생활을 마치고 해방되던 해 10월 27일 석방된다. 이후 박열은 일본에서 신조선건설동맹을 결성하고, 이어 재일본조선인거류민단의 초대 단장을 맡기도 했다. 1949년 영구 귀국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가 1974년 생을 마감했다. 자유개방적인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박열의 치열했던 삶의 이력은 매우 차별화되고 특별했던 항일투쟁 기록으로 평가된다.

그 박열이 1946년 5월 15일 부산에 왔었다.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안고 부산에 온 것이다. 의사들의 유해 발굴과 송환에 대한 백범 김구의 부탁을 받고 일본 형무소와 사형장 뒤쪽에 버려져 있던 유해들을 찾아 발굴해 고국으로 모셔온 것이었다. 꼭 한 달 뒤인 1946년 6월 15일 순국합동영결식이 부산공설운동장(구덕운동장)에서 개최됐다. 1946년 6월 16, 17일 자 동아일보에 ‘삼열사추도식 십오일엄숙집행(三烈士追悼式 十五日嚴肅執行)’과 ‘조국(祖國)에 한 몸 바친 삼열사부산(三烈士釜山)에서추념식(追念式)’이란 제호의 기사들과 대창정(大倉町)에 있던 유해 안치장에서 대청로와 구덕로를 거쳐 구덕운동장에 이르렀던 운구 행렬의 빛바랜 흑백사진들을 통해 어렴풋이 당시 정황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땅이 젖어 있는 것으로 보아 부슬부슬 내리던 장마가 막 시작되었나 보다. 대청로 양옆으로 줄지어 서서 머리 숙인 학생들의 마음처럼 슬픈 비였다. 선두에 선 윤봉길 의사의 십자가 형틀과 만장들을 묵묵히 따르고 있는 시민의 모습은 그날의 엄숙함을 대변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마치 자신이 젊은이들을 사지(死地)로 내보냈다는 죄책감으로 의사들의 고국 송환을 염원했던 백범 김구의 비통한 목소리도 바로 곁에서 들리는 듯하다.

영결식 후 부산역에서 해방자호(열차)에 실린 유해들은 서울로 이송돼 효창공원에 봉안됐다. 비록 유골 상태였지만 대한해협을 함께 건넌 동지들처럼 세 의사의 묘는 지금도 나란히 함께 있다.

세 의사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3·1독립만세운동을 통해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박열도 마찬가지다. 3·1독립만세운동과 함께 공립보통학교를 스스로 뛰쳐나왔던 윤봉길은 예산에 살던 13세 소년이었다. 서울에서 3·1운동의 현장을 보았던 이봉창은 20세, 정읍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백정기는 24세, 그리고 일제의 학교(서울)를 뿌리치고 귀향해 문경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박열은 18세였다. 나이도 달랐고 살던 지역도 달랐지만 그들에게 있어 3·1독립만세운동은 농촌계몽과 독립운동, 그리고 항일투쟁으로 이어지게 했던 인생의 대전환점이 되었다.

1919년 3월 1일을 계기로 항일투쟁의 불구덩이로 뛰어든 선조들이 어찌 이들뿐이었을까. 선조들에게 3·1독립만세운동은 어떤 것이었을까.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소원하며 절규했던 그들의 외침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것을 ‘삼일정신’이라 부른다. 삼일정신은 1919년 4월 11일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탄생하게 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만주에서 항일무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의 결성, 연이어 백범의 한인애국단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듬해에는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등을 통해 무장독립투쟁의 역사가 펼쳐지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무력이 아닌 방식, 즉 삼일정신은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치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등 비폭력 민족운동으로도 이어졌다. 나라를 잃었던 황망한 시대 상황 속에서 전 국민이 참여했던,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미래를 되찾기 위한 민족자각운동이었던 삼일정신은 결과적으로 지난 100년 동안 대한민국을 지탱해온 기반이었고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오랜만에 읽어보았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로 시작되는 선언서 곳곳에서 구태의 전제군주 시대를 벗어나, 조선은 국민이 주인이자 남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주민에 의한 민주주의국가임을 천명하고 있다. 또 강권적 침략주의에 대항하여 자주독립국가가 되어야 함도 주장한다. 나아가 계급타파, 남녀평등, 민족존영 그리고 동양과 세계의 평화도 요구하고 있다.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원망을 넘어 강압적 지배에 대한 불합리성과 자주민으로서의 새로운 시대에 대한 애절한 외침이었다.

분명 삼일정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거쳐 대한민국의 강령으로 이어지고 있다. 꼭 100년이 되는 오늘, 우린 삼일정신이 지난 100년 동안 건재한지 또 흔들림이 없는지 깊게 살펴보고 되돌아보면 좋겠다. 선조들은 이렇게 외쳤다. “슬프도다! 지난 시간의 억울함을 세상에 널리 펴려면 지금의 고통을 헤쳐 벗어나려면, 다가올 장래의 위험을 제거하려면, 쪼그라들고 축소된 민족적 양심과 국가적 위상을 키우고 떨치려면, 국민 개인의 인격을 정당하게 향상시키려면, 가련한 아들과 딸들에게 이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대대로 영원히 행복과 영위를 전해 주려면 가장 시급한 일이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이 외침은 후손들에게 자신들과 같이 ‘뒤늦은 후회를 하지 말라’는 선조들의 간절한 요청이었다.

내일부터 또 한 번의 100년이 시작된다. 앞으로의 100년에는 선조들이 애타게 외쳤던 그 삼일정신이 티끌만큼의 퇴색 없이 다시 살아나며, 뒤늦은 후회가 아닌 앞선 준비로만 채워지는 그런 시간이 되길 희망해 본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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