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지 싶으면서도 마주보고 앉아 밥 먹는 내내 휴대전화를 만져대는 사람을 보면 그 자리가 그다지 달갑지 않다. 회의 중에도 마찬가지다. 폰을 잠시 내려놓으면 세상 큰일 나는 불안한 VVIP가 주위에 너무 많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나 역시 종종 벗어날 수 없으니 탓할 수 만도 없다.

몇 년 전, 보름간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소통에 대한 불안함이었다. 폰이 터지지 않는 깊은 산 속 오지, 방송국이나 집에서 급한 연락이 오면 어쩌지.

‘나’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해본 일이 없는 ‘나’ 중심의 세상. 그러나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은 채 보름이 지났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나 없이 생긴 아무 일’은 ‘나 없이도 무난히 잘’ 넘어갔다. 결국 걱정은 내가 자초하는 일말의 불안감이었다. 바로바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면 불안하고 두려운 세상. 살아있음을 즉각적으로 티내고 보여주지 않으면 밀려날 것 같은 세상. 흡사 보여주지 못해 안달난 세상을 살아가는 기분이다. 지난해 연말, 초등학교 4학년 조카를 만났다. 11살 어린 조카의 유튜브 방송에 팔로어가 200명이 넘는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도대체 그 어린아이가 무엇을 보여주길래 그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걸까. “그냥, 재밌는 거요.”

재밌는 거? 방송을 20년 넘게 해온 나도 머리가 돌지 않는다. 뭐가 재밌지? 뭘 보여줘야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지? 생각나는 대로 보여준다고 했다. 손가락 장갑으로 춤을 만들기도 하고 색종이를 이용해 희한한 것을 접기도 하고 숙제를 하다가 보여주기도 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을 고민해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대로 보여주면 사람들이 재미있어 한다는 것. 그러고 보니 보여주려는 동영상이 주위에 넘쳐난다. 골라보기도 힘들만큼 말이다.

당신(You)과 브라운관(Tube)의 합성어로 시작된 유튜브는 2005년 모두가 쉽게 영상을 공유하자는 기술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윳병과 유튜브를 함께 안고 태어났다는 비유처럼 요즘 아이들은 SNS 를 달고 산다. 통계사이트인 소셜 블레이드에 따르면 채널 수만 2430만 개, 한 달 사용자만 약 18억 명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난해 말 한국사회의 초등학생 희망직업이 판검사의 ‘사’ 자를 제치고 유튜버가 5위로 진입하는 진풍경을 낳았다.

‘보여주는 것’만 봐야 했던 그간의 미디어에 온 세상이 질려버린 걸까. 보고 싶은 것을 거침없이 볼 수 있는 짜릿한 솔직함에 반해 버린 걸까. 세계는 유튜브 증후군에 휩싸여 있다. 정해진 시간에 일방적으로 찾아오는 공급자 중심의 소통이 아니라 보고 싶은 걸 얼마든지 골라보는 수급자 중심의 소통. 환경이 바뀌니 미디어를 다루는 입장에서 위기감이 드는 게 사실이다. 오래전 라디오에 위기가 찾아왔다. 생존을 위해 방송사마다 보이는 라디오를 시도했다. 인터넷 기술을 접목해 라디오도 볼 수 있다고 홍보했다. 라디오PD로서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나 연예인 많은 서울지역 방송과 달리 지역방송에서는 보여줄 게 한계가 있었다. 매일 보는 뻔한 스튜디오, 누가 그리 매일 재미있게 볼 것인가.

비 오는 날이면 진행자에게 노란 우산을 들려주고 음악이 나오면 춤추게 하고 새벽에도 의상에 신경을 쓰게 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며 CD와 원고를 들고 볼거리를 만들었지만 맥없이 지쳐갔다. 이제 사람들은 ‘보여주려는’ 것보다 ‘보여지는’ 솔직한 상황에 더 열광한다. 매일 진화하는 세상, 정답이 없다. 그저 ‘변화를 앞서가는 창의적 사고’만이 생존 키워드다.

바닷길을 걷는데 ‘길쭉한 호떡’이라 붙은 광고지에 눈길이 간다. 호떡은 원래 동그랗다는 고정관념을 깨버린 길쭉한 호떡에 선뜻 돈 내밀고 맛을 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찾을게 아니라 다른 시선으로 봐야 한다. 이런 두려움이 우리를 내내 폰과 SNS에 매달리게 한다. 세상에 질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허리 펴고 국민체조하며 새로운 동영상 뒤지기에 가세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부산영어방송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