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물결이 창공을 휘젓는다.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더니 아래로 아래로 몸을 낮춘다. 후드득 모과나무 잔가지를 흔들며 검은 새들이 내려앉는다. 빈 가지뿐인 모과수가 일몰을 배경으로 성스러운 한 그루 까마귀 나무로 완성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사는 아파트 마당에 까마귀 떼가 자주 출현한다. 먹이사냥 터가 수영강이나 기장 벌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선 대신 마른 나무 우듬지를 정거장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들은 깃을 고르며 매무시를 다듬기도 하고 부리를 세우며 명상을 즐기다 사라지곤 했다. 그 모습을 내가 올려다보거나 경비실 고양이가 사나운 울음을 내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꿈쩍 않는다.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가 반갑다더니 한동안 꾸이꾸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러던 참에 울산 대숲의 떼까마귀들이 곧 시베리아로 귀향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십수 년 전부터 가을이면 수만 마리의 까마귀가 태화강 주변으로 날아와 겨울을 보낸다. 떼까마귀들이 펼쳐내는 화려한 군무를 눈에 담고 싶었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배낭을 메고 운동화 끈을 조였다.

붉은 하늘이 길을 열어준다. 인근 논밭에서 낙곡과 풀씨 사냥을 하던 새들이 잠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밤에는 강 부근의 대숲에서 잠을 자고 해뜨기 전 이소하여 먹이사냥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숲으로 모여든다.

까마귀들은 아침에 숙영지를 떠나거나 돌아오는 해거름 때도 그들 중 선발대들은 꼭 인가가 있는 시내 전깃줄 위에 머문다. 교향곡 악보처럼 수많은 새가 오랫동안 앉아 있다. 전문가들은 천적을 살피는 보초병의 행동으로 풀이하지만 내 눈에는 마치 인간의 영역을 관장하러 온 신조(神鳥)처럼 보인다.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거룩하기까지 하다.

경이롭다. 까마귀 떼가 하늘을 덮었다. 검은 새가 검은 구름을 안고 검은 춤을 춘다. 사람들은 장엄한 춤사위에 탄성을 지르면서도 그들이 가까이 오는 것은 원치 않는다. 한때 벽화나 불화에도 등장한 나라새였지만 언제부턴가 흉조라는 오해가 굳어졌다. 아침 까마귀를 불길한 징조라 여기고, 옛 선비들은 근묵자흑(近墨者黑)을 읊으며 까마귀 골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 오늘날에도 까마귀밥이니 까마귀 고기라며 비웃는다. 잠시 흐트러지기만 해도 오합지졸을 들먹인다.

이와 달리 북방 지역에서는 까마귀를 신격화한다. 시베리아 코랴크족은 큰까마귀를 최초의 조상으로 여겨 큰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신의 매개자로서 정령의 말을 전하는 샤먼의 위상까지도 부여한다. 이누이트 신화는 까마귀가 태초에 물속으로부터 땅을 끌어올렸다고 기록하고, 야쿠트인들은 까마귀 깃털을 관에 넣으며 저승으로 인도해 주는 새라고 믿는다. 그들 모두 까마귀를 신성시여기는 것은 무엇보다 검은색이 주는 위엄 때문이 아닐는지. 까마귀만큼 철저하게 검은 털을 가진 새가 있을까.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영기(靈氣)의 색에 경외감이 인다.

땅과 하늘과 대숲과 강물도 모두 검은색을 닮는 시간. 그러나 물질문명에 양심과 도덕성을 상실한 인간들은 겉으로만 백로인 양 고고한 척 한다. 태화강 까마귀는 해마다 증가하고 도심 가까이로 내려온다. 인간은 까마귀가 다가오면 그 사정을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쫓아내기에만 바쁘다. 악취와 소음과 분진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더더욱 꺼린다.

야생의 새가 인간이 사는 곳까지 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까마귀 눈으로 봤을 때 어쩌면 인간이 더 음흉한지도 모른다. 새들도 먹이를 찾으려면 땅을 밟아야 하고 잠을 잘 때도 필히 지상으로 내려와야 할 터. 신이 이 땅을 인간에게만 주었겠는가. 대지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인간이 대지에게 속해 있다는 인디언들의 경구를 기억할 일이다.

우우우 함성이 밀려온다. 매일 밤 공중선회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참으로 우매한 인간은 까마귀의 뜻을 제대로 알려하지 않는다.

이제 곧 까마귀들이 따뜻한 남풍을 타고 떠난다. 자신이 까마귀인 줄 모르는 인간을 향해 ‘속이 시커멓다’는 말을 남기며 날아가리라. 까마귀 떠난 자리에 지천으로 봄꽃은 터질 테고.

평론가·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