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시인’이 있다. 신동엽(1930~1969)이다.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는 시구로 그는 우리 문학사에서 영원한 ‘4월의 시인’으로 자리잡았다. 오는 7일이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된다.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의 시와 사상은 여전히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1967년 ‘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절규하듯 전했던 그의 메시지가 지금도 유효한 것처럼 한반도의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껍데기는 가라’는 함성의 주체는 민중이다.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으로 살아 있는, ‘1960년 4월/역사를 짓눌던, 검은 구름짱을 찢고/영원의 얼굴을 보았’던 민중이다. 신동엽은 민중을 ‘아사달, 아사녀’라고 불렀다. ‘두 코리아의 주인은 우리가 될 거야요. 미워할 사람은 아무데도 없었어요.(중략)창칼은 구워서 호미나 만들고요. 담은 헐어서 토비(土肥)로나 뿌리세요’. 그 민중은 중립주의를 추구한다. 남북한은 물론 세계 모든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중립이다. 그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고 했다.

그 중립국의 시민은 ‘전경인(全耕人)’이다. 대지에 뿌리 내린 욕심 없는 인간이란 뜻으로, 신동엽이 ‘시인정신론’에서 개진한 철학의 집약체다. 그는 전경인적 시인이 되고자 했고, 실제 1959년 등단 이후 작고할 때까지 10년간 그렇게 살다 갔다. 4800여 행의 장편 서사시 ‘금강’과 ‘껍데기는 가라’ 등 불후의 명작들에 전경인 신동엽의 행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와 함께 1960년대 우리나라 시단을 이끈 김수영은 그의 문학에 대해 “강인한 참여의식이 깔려 있고, 시적 경제를 할 줄 아는 기술이 숨어 있고, 세계적 발언을 할 줄 아는 지성이 숨 쉬고 있다”고 평했다.

그럼, 신동엽이 말하는 ‘알맹이’는 무엇일까. ‘알맹이는 여기/언제나 말없이 흐르는 금강처럼/도시와 농촌 깊숙한 그늘에서 우리의 노래 우리끼리 부르면서/누워 있었니라’. 그는 금강에서 알맹이를 봤다. 금강은 ‘옛부터 모여/썩는 곳/망하고, 대신/정신을 남기는 곳’이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치열한 성찰로 가꾼 미래, 모든 쇠붙이(무기)가 사라진 뒤 전경인들이 오손도손 살아갈 평화로운 한반도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