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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잡문과 잡초 /황선열

조선시대 詩 이외의 글 잡문 취급 당하기 일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 알고 보면 인문학 뿌리…다양한 삶의 지혜 담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12 19:20:23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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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홍길주의 문집을 읽노라면 잡저(雜著)라는 글이 유독 많이 보인다. 그 당시에야 시 이외의 모든 글쓰기는 잡문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잡문을 읽다보면 참으로 뛰어난 글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 글들에는 삶의 지혜와 학문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숱하게 들어 있다. 인간의 살아가는 방식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담아낸 잡문에는 선인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지혜가 가득 담겨 있기 마련이다. 정약용이 남긴 편지글을 모아 놓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어보면 정약용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에서 백부를 아버지 같이 모셔야 한다는 말을 남기면서 그의 형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자신이 쓴 모든 저술을 합친 것보다도 값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같은 저술은 조선 시대 전체를 살펴보아도 이보다 뛰어난 책은 만나기조차도 어려울 터인데, 정약용은 자신이 쓴 모든 저술이 그의 형님이 쓴 ‘자산어보’에 못 미친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다산의 겸손함이 놓여 있지만, 무엇보다도 ‘자산어보’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자산어보’는 말 그대로 바다에 사는 생명들에 대한 잡학사전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오랫동안 고서를 탐독한 장덕순과 함께 연구한 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이야말로 오늘날 어류도감의 근원이 되는 방대한 자료의 집적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부들의 삶과 밀착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어종을 몰라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궁벽한 섬사람들을 위해서 어종 하나를 자세하게 설명한 책이다. 정약용의 말에 따르면 ‘자산어보’야말로 백성을 살리고 무지를 깨워서 함께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정약전은 어부들의 말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회자한 모든 책을 섭렵해서 ‘자산어보’라는 잡학사전을 쓴 것이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백성과 학자가 만나서 영원히 살아 있는 한 권의 책이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잡문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근원을 보여주는 인문학의 뿌리가 되는 글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본기보다는 열전이 훨씬 흥미진진하다. 사마천은 각 본기의 끝부분에 쓴 태사공의 말만으로 자신의 철학을 다 담아낼 수 없었기 때문에 열전 편에서 그것을 담아냈다. 이 때문인지 열전은 본기와는 달리 문체에 생기가 넘친다. 본기는 정도(正道)의 글쓰기라고 한다면, 열전은 잡도(雜道)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열전은 사마천이 발품을 들여서 쓴 글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다양한 삶의 모습이 풍성하게 살아 있는 글이다.

잡문이야말로 사람살이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그들의 삶 속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배우도록 한다. 유협은 ‘문심조룡’의 전체 장에서 잡문이라는 하나의 장을 따로 두어서 문예미학의 의미를 말하고 있는데, 그는 시 이외에 대문, 칠발, 연주만이 잡문의 영역에 속한다고 전제하면서 이 잡문이 나중에는 전(典), 고(誥), 서(誓), 문(問), 남(覽) 등으로확장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야말로 시 이외의 글들이 잡초와 같이 번져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잡문은 사람살이의 모습을 다양한 글쓰기의 방법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당의 잔디밭에 군데군데 나온 잡초를 뽑느라고 하루에 한 번씩 잡초를 뽑는 도구를 들지 않을 때가 없다. 잔디밭에 잔디만 살고 다른 풀은 모두 제거하는 제초제도 있다고 하니 사람들의 잡초에 대한 횡포가 극도에 이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마당의 잡초를 뽑다보면 뽑아내기가 아까운 앙증맞은 꽃들을 피우는 잡초도 있다. 잔디밭에 자라는 몇 가지 풀들이 잡초로 분류되어서 수난을 겪고 있는 것이지 잡초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예쁘지 않는 풀이 없는 것이다.
잡초를 제거하려고만 하지 말고 잡초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잡초야말로 다른 모든 풀과 함께 생명을 가진 존재인데, 왜 없애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는가? 인간의 관점으로 볼 때 쓸모없는 풀일뿐이지만 초식동물에게 잡초는 더 이상의 양식이 없을 터인데 말이다. 관점을 다르게 보면 세상도 다르게 보일 것이다. 잡문 나부랭이만 쓴다고 투덜대는 문인이 있는가 하면, 내 인생은 잡초 같은 인생이라고 하소연하는 무리도 간혹 있다. 그러나 산더미 같이 내다버릴 잡문을 쓰는 작가가 되어보라. 그리고 뽑아도 다시 자라는 잡초 같은 인생이라도 되어보라. 그 문인이야말로 참된 문인이고, 그 인생이야말로 보석 같은 인생이 아닐까? 홍길주는 문집에 실을 글의 몇 곱절을 아궁이에 보냈다고 한다. 잡문이야말로 글쓰기의 기본이고, 잡인문학이야말로 참된 인문학으로 가는 길이다. 정도(正道)에는 잡도(雜道)가 뒤섞여 있는 법이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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