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예고한 대로 어제부터 우리나라 주력 수출 제품인 반도체·스마트폰·디스플레이에 사용하는 소재부품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개시했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을 노골화한 것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역사문제를 통상문제와 관련시킨 게 아니라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에는 우대조치를 취할 수 없다며 사실상 보복성 조치임을 인정했다. 홍남기 부총리 또한 이를 “명백한 경제 보복”이라고 비판하고 나서 양국 간 갈등이 갈수록 고조되는 양상이다.

아베 총리는 이번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이는 자국 내에서조차 비판받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이 주장해온 규칙에 기초한 자유무역의 추진이라는 이념에 반한다는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불신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뿐 아니라 일본 내 상당수 유력 언론이 같은 논조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많은 일본 전문가는 이번 사태가 한일 공멸로 이어질 수 있다며 규제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 같은 일본 국내외의 비판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우리 정부의 대응책을 보면 우려가 앞서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당장 해당 기업에 피해가 닥칠 텐데 이에 대한 대비가 영 미덥지 않아서다. “앞으로 상황을 보면서 (후속 대책을) 연구해야 할 것 같다”는 외교부 장관의 발언이 단적인 예다. “지금 무대응이지 무대책은 아니다”라는 청와대의 말도 무책임하긴 마찬가지다. 기업들의 발등에는 불똥이 떨어졌는데 정작 정부 당국의 인식은 한가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기업들에게 닥칠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어제 관계기관 회의를 열어 일본이 수출을 규제키로 한 3개 품목은 물론 추가 제재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서도 자립화 지원에 나서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을 터이다. 이를 포함해 향후 사태 장기화에 대비한 방안을 더욱 주도면밀하게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 아울러 홍 부총리 언급처럼 다각적인 상응조치 등 외교적 노력에도 전력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