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성장률 동반 하락…‘R의 공포’ 확산’ ‘수출 9개월째 감소…반도체 등 주력 품목 휘청’ ‘한국 경제성장률 2%도 어려워’. 최근 한 달여 동안 ‘조국 광풍’ 속에서도 신문의 주요 면을 장식했던 헤드라인들이다.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경고하는 신호였지만 ‘조국 블랙홀’에 묻혀버렸다.
조국 장관 임명 후 추석이 지나면서 경제에 대한 우려가 슬슬 나온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최악’을 가정한 컨티전시 플랜(비상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 앞에 두 가지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나는 경기후퇴이고 하나는 디플레이션 우려이다. 경기가 후퇴하면 먹고살기 어려워진다는 건 다들 안다. 더 위험한 건 디플레이션이다. 잘못 대처하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장기불황에 빠진다. 부정론자들은 제2의 외환위기를 거론하기도 한다. 이는 사회적 약자와 서민들 생계에는 직격탄이다. 부유층은 어떻게든 고비를 넘기겠지만, 서민들은 견뎌내기가 쉽지 않다.
사정이 이런데도 변화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이건 현 집권층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인사들인 86세대는 평생을 기득권의 불의에 맞서 투쟁한 사람들이다. 사회 가치에 모든 걸 걸었던 지사(志士)들이다. 정의로운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타협하지 않고 앞만 보고 간다.
이들이 펴는 경제정책에도 성향은 고스란히 반영된다. 시장의 흐름은 보지 않고 일부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계층 간 격차 해소와 사회적 약자 보호 대책을 밀고 나간다. 반발은 무시하고 정면돌파한다. 최저임금 정책이 그랬고, 일본과의 경제갈등에 대처하는 게 그랬다. 지금 온 나라를 뒤흔드는 조국 장관 파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자.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둘로 갈라진 사회 분열뿐만이 아니다. 경제도 큰 타격을 입었다. 성장률의 둔화와 경제 위축이 시작된 지 오래다. 이미 2%대 성장이 간당간당하다. 외국의 기관들은 1%대까지 내다보는 곳도 있다.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오는 2050년이면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7만~8만 달러에 달하고, 2045년이면 남북한 평화통일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매년 3% 이상의 경제성장을 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집권한 86세대들이 정책을 바꾸거나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평생을 기득권 세력과 투쟁해 비로소 권력을 잡은 그들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을 것이고 이것저것 눈에 밟히는 것도 많을 것이다. 나라 살림만 든든하다면야 뭐가 걱정이겠냐만 화수분이 아닌 다음에야 다 퍼주다 보면 곳간은 거덜 나기 마련이다.
반면교사는 많이 있다. 유럽의 몇몇 나라가 그 증거다. 이탈리아는 2000년대 초반 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지금도 3만 달러이다. 비슷한 시기에 3만 달러에 도달했던 스페인과 그리스는 되레 3만 달러 아래로 미끄러졌다. 다 어설픈 정치와 정부 정책이 경제를 망친 때문이다.
이젠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현 집권 세력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임기 안에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건 가능하지도 않다. 경제는 생물이다. 변화무쌍하고 불규칙적이다.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법이 달라야 한다. 개혁 방향이 옳다면 주변의 도움을 받을 방안을 찾아야 한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에서 과속하다 보면 차가 넘어질 수도 있다. 생각이 다른 절반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야당의 외침을 억지라고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내우외환에 거덜 나게 생겼다는 기업가들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이 들리지 않는가.
전경련이 조사해 지난 15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 대기업 중에서 3분의 1은 신규채용을 줄일 계획이란다. 작년보다 늘리겠다는 곳은 17%에 불과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 수출규제,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경기 침체가 고용 한파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지난달 고용지표의 반전 또한 구직 포기자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역설이 숨어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온 힘을 쏟고 노동자의 삶을 잘 보살피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 더해 경제를 챙겨달라는 거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좋은 정책일지라도 국가 경제와 나라 살림을 해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데는 정부의 잘못이 작지 않다.
개혁을 제대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집권여당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 지금 국민은 조국에 지쳤다. 국면 전환을 위해서라도 스탠스를 옮겨야 하지 않겠나. 내년에 총선도 있다. 경제를 망치고 선거에서 이긴 사례는 없다.
디지털미디어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