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열린 미국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세계적인 기업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연단에 섰다. 12년 전 하버드를 중퇴했던 학생이 자수성가한 CEO가 돼 역대 최연소 연사로 축사를 하는 순간이었다.

서른세 살의 저커버그가 이날 한 연설의 주제는 ‘목적(Purpose)’이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밀레니얼 세대의 도전은 “단지 목적을 찾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이 목적을 갖는 세상을 만드는 것”임을 강조했고, 졸업생들은 열광했다. 이어 저커버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라며 존 F.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사례를 소개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이 미국항공우주국 나사(NASA)를 방문했을 때, 빗자루를 든 청소부를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 청소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대통령님, 지금 저는 인간을 달에 보내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Mr. President, I’m helping put a man on the moon).”

케네디 대통령은 당시 우주비행사를 달에 착륙시켰다가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아폴로 계획을 점검하기 위해 나사(NASA)에 들렀다. 여기서 우연히 만났던 그 청소부는 어떻게 ‘자신의 일’과 ‘인류의 달 탐사’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었을까. 청소부라면 으레 스스로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그저 허드렛일이나 하는 존재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청소부는 자신이 위대하고 원대한 계획의 한 부분이며,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고,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목적의 힘’이다.

근래 몇 년 새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확산을 넘어 우리 사회에 주요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는 일과 삶의 통합을 추구하는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사실 워라밸은 요즘 등장한 용어가 아니다.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개인의 업무와 사생활 간의 균형을 의미하는 단어로 처음 사용된 이후, 현대인의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한국 사회에서는 40여 년 만에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워라밸 문화가 퍼지면서 열악했던 근로 조건이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조직 문화가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일과 삶을 분리함으로써 하루 24시간 가운데 무려 3분의 1이 넘는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의 즐거움과 행복을 간과하기 쉽다는 지적 역시 제기됐던 것도 사실이다.

‘워라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일과 삶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는 일과 삶을 복합적으로 융합해나가는 것이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한다. 직장에서의 개인적 성장과 성취감으로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이것이 더 큰 성과를 창출하고 나아가 조직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윈윈 관계’의 상호보완적인 삶을 우리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이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기업도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주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모임에서 ‘기업의 목적’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꼽은 기업의 목표는 주주의 이익 추구가 아니라 직원에 대한 투자와 고객과 지역사회에 대한 가치 전달, 공급자와의 윤리적인 거래였다. 이 모임은 20여 년 전 주주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기업 경영진과 이사진의 가장 중요한 의무라고 천명했던 단체다. 기업과 관련한 모든 이해당사자에 대한 기업의 책무를 현대화된 경영원칙으로 제시한 이번 입장 선회가 더욱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내가 이 일을 왜 하는지, 나와 우리 조직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 필자는 취임 이후 지금까지 CEO로서 은행의 미래에 관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동시에, 직원이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결코 부끄럽지 않은 목표를 제시하고자 노력해왔다.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일에 몰입하게 만들고, 그 어떤 동기 부여보다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직원들에게도 늘 목표를 세우고, 일의 본질에 집중할 것을 당부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지 고민하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다른 일과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시야를 조금 더 확장해줄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매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 전체가 달라진다. 날마다 하는 일도 매일 새로울 수 있다. 직장에서의 삶에서도 목적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부산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