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발달했다고 ‘시대’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대중이 발달한 문명에 적응하고 향유하는 과정에서 의식체계와 삶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바뀔 때 비로소 시대가 변화한다. 시대를 이끄는 주체는 문명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외도 있나 보다. 우리가 사는 ‘디지털시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마트폰의 세상은 문명의 발달과 동시에 문화와 세상의 변화를 너무나도 ‘스마트하게’ 가져 왔다.

사람들은 미리 맞춰둔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습관적으로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음악을 듣고 웹툰을 보며 한편으로는 쉴 새 없이 메시지를 보내면서 출근한다. 직장에 도착해 일하면서도 스마트폰을 통해 들어오는 알림을 놓치는 일은 없다. 퇴근길에는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고, 모바일 쇼핑을 하며, 공유하고 싶은 일상의 모습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 현대인의 하루는 스마트폰으로 시작해서 스마트폰과 함께 마무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스마트폰의 부재’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처럼 보인다. 스마트폰으로 관계를 맺고 유지하며, 스마트폰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는 디지털기기를 ‘편리함’으로 받아들이고, 디지털시대에 사는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 예전보다 개인의 취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양한 취미활동을 장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무색할 만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여가시간을 보낸다. 어쩌면 디지털시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멀티태스킹’은 고도화된 상태의 ‘스마트폰 의존도’를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디지털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그에 따른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기기의 지나친 사용으로 오프라인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사회성이 약해지고 있으며, 건강상의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개인정보 유출과 첨단기기 미사용에 따른 불안감도 우려 요인이 된다.

최근에는 모든 것을 디지털기기에 의존하다 보니 전반적인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상태인 ‘디지털 치매’ 현상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거의 없고, 모르는 것이 있을 때는 포털사이트의 검색창부터 연다. 간단한 계산조차도 디지털기기를 이용하는 모습을 남의 이야기로만 흘려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디지털 치매는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회현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른바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디지털기기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디지털기기를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가 개인의 경쟁력으로 인정받고, 모든 삶의 영역에 스마트폰이 관여하고 있는 현대사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모바일을 통해 온라인에 연결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현대인들은 스마트폰이 없는 상황을 ‘단절’로 받아들인다.

요즘 디지털 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의 한 가지로 투박한 ‘아날로그 감성’으로의 회귀 현상이 눈에 띈다. 영국의 한 지역에서 런던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을 묻는 공모에서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라는 답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것은 숫자가 아닌 아날로그 감성이다. 스크린 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글자보다는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한 장씩 넘기는 종이신문의 아날로그적 매력이 훨씬 더 따뜻하다.

얼마 전 치러진 수능에서는 시침과 분침으로 또각또각 움직이는 ‘아날로그 시계’의 착용만 허락되었다. 디지털 시계의 화려함보다는 아날로그 시계의 단순함이 공정성 면에서 신뢰를 받은 셈이다. 세상의 기준도 다소 늦고 뒤처진 것 같지만 ‘공정하고 보편적인’ 아날로그 감성에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기술의 방향은 아날로그의 가치를 향해야 한다. 우리의 가치관과 학습능력보다, 우리 삶의 방식에 파고드는 디지털혁명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 인간에게 편리함을 부여하는 디지털과 인간만의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아날로그를 적절히 혼합하여 균형 있는 삶이 되도록 하는 건 어떨까. 이 복된 세상을 좀 더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갈 현명한 타협이다.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