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이나 정치학에서 해결되지 않는 난제가 민중과 지도자의 관계이다.

정치체제에 대한 많은 이론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군주정이 타락하면 전제정, 귀족정이 타락하면 과두정, 민주정이 타락하면 중우정치가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므로 대한민국 정치체제의 미래는 민주정이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며 이것은 민중과 지도자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중은 누구이고 지도자는 누구인가.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 절정기는 펠리클레스 시대였고, 로마공화국 절정기는 명장 한니발이 로마를 침공한 제2차 포에니전쟁에 승리한 이후였다. 이 시기에는 위대하고 사심 없는 지도자와 강인하고 부패하지 않는 민중이 공화국을 이끌어나갔고 문화와 국력에서 절정기를 맞이했다. 심지어 제2차 포에니전쟁 이후 로마의 민중은 한니발을 격파한 명장 스키피오가 독재할 위험이 있다고 하여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민주정의 절정기에 민중과 지도자의 관계는 조화롭고 창조적 관계가 되나 민주정이 타락할 때는 선동가가 나타나 민중을 현혹한다. 무엇이 민중과 지도자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것인가. 민주정에서 지도자를 선택하는 주체는 민중이다. 민중은 목전의 이익에 좌우되고 선동에 넘어가기 쉽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민중이 일시적으로는 선동과 눈앞의 이익에 좌우되는 경우도 많지만, 국가 위기상태에서 민중이 지도자를 택할 때는 본능적으로 정확한 감각을 가지는 것은 많은 역사 사례가 보여준다. 민중이라는 말을 독점하려는 세력도 있지만, 민주정에서는 국민 대다수가 민중이며, 지도자는 민중이 선택해 국정을 위임한 사람이다.

남북전쟁 직전 미국의 민중이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경력도 없는 링컨을 택한 것,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의 민중이 한물간 70대 정치인 처칠을 택한 것 등은 민중이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에 본능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속담에 “민심은 천심이다”는 말이 있다. 천도(天道)는 결국 올바른 길을 간다는 것이 한국인의 전통적 믿음이며 이 속담은 민심은 결국 올바른 길로 간다는 한국인의 확신을 표현한다. 민중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본능적 감각을 갖고 있다. 민중은 일시 선동에 좌우될 수도 있지만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결국 정확히 판단한다.

링컨이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을 속일 수 있고, 일부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 없다”고 한 것을 정곡을 찌른 말이다. ‘결과’가 결국 진실을 보여주는 것은 역사의 오묘함이다. 민중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거짓과 신의에 대한 배신이다. 군주정 시대에는 무능하거나 사악한 지도자를 혁명으로 교체했다. 민주정에서 민중은 투표라는 수단이 있다. 투표를 영어로 bullet이라고 하는데 이는 탄환을 뜻하는 bullet에 비유되기도 한다. 투표를 통해 민중은 어느 주장이 옳으냐를 가리는 마탄의 사수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민중이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상황과 관련이 있다. 인류의 현자인 괴테는 “발전하는 시대에는 모든 것이 객관적이고, 쇠퇴하는 시대에는 모든 것이 주관적이다”고 했다. 포플리즘이 횡행하는 남미와 달리 한국 사회가 발전하는 시대라면 민중은 본능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민중은 아직 많은 저력과 애국심을 지니고 있다.

한민족이 중국의 지척에서 살아남은 것은 역사의 기적이다. 그 이유는 ‘하늘의 도움’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시대 변화, 위기상황에서 나타나는 뛰어난 지도자, 한국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지 않았으면 한국은 중국의 문화적 속국이 되었을 것이고 오늘의 한류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나타난 것은 당시의 조선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하늘의 뜻이 아닌가. 위기에서 나타나는 한국 민중의 강인한 생명력도 한국사를 유지시킨 원동력이었다. 모든 면에서 사면초가에 처한 현재 한국 현실에서, 역사의 위기상황에서 나타난 우리 민중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이 다시 발휘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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