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는 고군분투 중이다. 새로운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해 2월 문화예술 행사가 취소되고 있다.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로 뭉게뭉게 피어올랐어야 할 연기도 볼 수 없었다. 한 해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며 농사를 시작하는 것처럼, 정월 보름달을 보며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투쟁을 벌이는 모든 이의 안녕을 빌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모든 예술가의 창의적인 절박함이 지속될 수 있기 바라는 기원과 함께.

행사가 취소된다 하여 예술가들 인생이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어디선가 그들만의 공간에서 춤추고 그림 그리고 글 쓰고 노래하며 북을 치듯이 늘 그러한 창의적인 일상은 지속될 것이니. 다만 취소된 행사와 앞으로의 행사들에 대한 불확실성에 따른 당면의 불편이 실재적인 곤궁함으로 이어질 수는 있을 것이다. 지난 10여 년 부산 예술문화계를 전전한 내게 종종 다가온, 딱딱하게 굳은 의견들 속에는 ‘예술은 곤궁함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피력하는, 그릇된 판타지에서 비롯된 선입견이 많이 있었다.

예술이 그 어떠한 결핍에서 출발해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보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결핍이 곤궁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곤궁함이 창의성의 원천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며 새로운 기획을 도모하는 것은 기획자로서 나의 일이다.

‘다이내믹 부산’이라는 말처럼 부산에서 문화기획 일은 다이내믹하다. 부산 문화예술인의 기질이 항구도시 부산 사람의 기질과 다를 수 없기 때문일까? 이들과 함께하는 예술문화행사는 일촉즉발일 때가 많다. 됐나? 됐다! 이 두 마디면 충분하다. 조신하고 사려 깊게 재고하고 예단하지 않는다. 화끈하고 폼나게, 바다 사람의 저돌적인 실천력과 박력으로, 한다면 한다. 의리 있는 사람들, 우리가 남이가? 2, 3개월 준비로도 대형 컨벤션 전시가 가능했고 공연예술가들은 무대 위아래 가리지 않고 역할을 해냈다. 누군가는 작가, 기획자에 컬렉터까지 겸하며 예술에서 창작자·매개자·향유자 경계를 허물었다.

그간 ‘보이는 것’은 많은 발전을 보였다. 비엔날레를 위한 현대미술관도 생겼고, 광역·기초 문화재단의 많은 예술 지원사업, 문화기관들의 재도약과 시도는 이어졌다. 다소 걱정스러운 오페라하우스 건립 추진에 이어 아트 바젤 같은 세계적인 미술시장이 홍콩에서 부산으로 옮겨올 가능성을 타진해오는 등 많은 것이 보였고 앞으로 더 많이 보일 것이다. 그러면 각자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이게 하려고 지금도 붓을 들고, 땀 흘리며, 연주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창의적인 노력과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감동과 위안을 누리고자 하는 이들의 다이내믹한 발전은 함께했던 것일까? 누군가의 지적처럼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만 들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공지능 컴퓨터가 그린 그림이 고가에 경매되는 이 세상에서 예술가의 곤궁을 걱정하는 것이 판타지에 기초한 선입견이 아닌 실재하는, 보이는 세상이다. 그동안 참 다이내믹하게 경계를 넘나들었으니 이제 우리는 각자 영역에서 스스로를 구분하여 숙고하며 나는 누구인가 살펴볼 때가 된 것 같다. 나의 내면 깊숙한 어느 곳의 바이러스는 무엇인지, 경계의 질서가 무너질 때 나는 어디 서서 균형을 유지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하니 내 미적 가치기준을 가질 수도 없으며 보이는 것들에 대한 나만의 미적 판단 또한 대중이라 불리는 다수의 취향에 편승한다. 남들처럼 튀지 않게.

그러나 ‘나만의 독특한 그 무엇’은 창작자·매개자·향유자 모두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 요소이며 삶의 균형을 끌어내는 창의적 태도다. 남이 다 옳다고 할 때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 아닌 그저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고 알리는 다름일 뿐이다. 이런 다름의 다양성을 장착하고, 다이내믹하게 끓어오르는 부산을 상상한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걸 수 없이 확인하지 않았나! 나는 물리학이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있었으나, 제2의 호킹이라 불리며 물리학책도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음을 다시 보여준 이가 까를로 로벨리다.

그의 책 제목처럼 ‘보이는 것은 실재가 아니다!’

올아트22C 문화기획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