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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칼럼] 고난에 무너지지 않기 /최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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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2-24 18:49:19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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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도 어수선하다. 병원을 드나드는 모든 출입자는 명부를 적고 출입한다. 실내에서는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며칠 전(지난 21일) 우리 집 막내의 직장(병원)어린이집 졸업식이 있었다.

   
그림 서상균
물론 코로나19 사태로 가족들과 같이 모여서 축하해주는 자리는 없었지만, 어린이집 내에서 자체 행사가 있었다. 이 어린이집에서는 특이하게도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상을 주는데, 위인의 이름을 따서 주는 모양이었다. 이순신상, 김만덕상, 방정환상 등. 그런데 우리 아이가 받은 상은 ‘허난설헌상’이었다. 허난설헌은 조선 시대 중기의 빼어난 여성 시인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지극히 돋보이는 존재이다.

졸업식 전날 이 상을 받는다고 둘째가 집에서 이야기하니, 첫째인 11살짜리 언니가 이미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이미 읽어보았나 보다. “허난설헌은 시집에서 구박받고, 아이들도 전염병으로 잃고, 자기도 일찍 죽었다고 하는데 왜 어린이집에서는 그분 이름의 상을 주느냐”고 섭섭해하였다.

그 말을 들어보니 아내나 나도 속이 좀 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허난설헌(1563~1589)처럼 뛰어난 사람이 남녀차별이 심했던 조선 시대가 아니라, 현대에 태어나면 얼마나 그 재주를 꽃피웠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고, 졸업식 날에 선물로 받은 허난설헌의 일대기 책을 읽어 보니, 그 고난의 인생 가운데에서도 시를 썼기에 그 시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인간은 약해 보이고, 또 실제로 약하기도 하지만, 고난에 무너지지 않고 삶의 고통 가운데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숙명을 감내하여 한 걸음씩 내딛는 의지가 있기에 거기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고 느꼈다.

스물일곱 살에 요절한 허난설헌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쓴 시로 알려진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이라는 시는 인상 깊다.

제목 ‘몽유광상산’은 꿈속에서 광상산에서 노닐다라는 뜻이다.



창해는 요해로 스며들고, / 창란은 채란과 어울리는데. / 연꽃 스물일곱 떨기 늘어져 / 달밤 찬 서리에 붉게 지네.



하루 100명이 넘는 코로나19 환자가 전국적으로 생겼다고 한다. 부산에만 해도 확진자가 여러 명 생겼다고 하고, 대구는 이미 도시 전체가 패닉 상태라고 한다. 국가적 재난이다. 그러나 대부분 감염자를 파악하고 있고, 그들의 감염경로를 파악하고 있는 이상, 예상 못 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스나 메르스에 비해 감염력은 강하지만, 치명률은 떨어지는 것 같아 보인다.

전체적으로 재난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느냐 아니면 이 재난의 한가운데에서도 의사뿐 아니라 모든 우리나라 국민이,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하며 언젠가 이 재난이 끝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담담히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우리 선택에 달려 있다.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이 혼란의 시기에 누군가에 대한 비난과 책임 추궁에 대해 우리의 한정된 정력을 쏟을 것인가 아니면, 이 사태를 극복하는 데 모두 힘과 지혜를 모을 것인가 선택이다. 물론 국민에게 엄청난 걱정을 끼치는 신천지와 그들 특유의 정체와 동선을 숨기는 행태가 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분노와 증오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도 맞다.

   
자기 삶에서 맞닥뜨린 불행을 승화시켜 자신의 삶에 녹여내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일 것이다. 우리가 합심하여 이 국가적 재난을 잘 극복해내면 훗날 지금을 뒤돌아볼 때 이 재난의 경험은 우리와 우리 사회에 더없이 귀중한 재산이 되었음을 느끼게 되리라 믿는다. 지금도 일선에서 바이러스와 싸우고 계신 모든 의료진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도 내 자리에서 나의 임무를 다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

양산부산대병원 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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