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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마음에 달뜨다 /장미영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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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03-01 19:31:5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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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구포시장을 다녀왔다. 부산 북구 구포에 사는 친구를 만난 뒤 시장 구경을 했다. ‘구포 국시’가 빠지면 서운할 듯해 ‘면발이 탱탱하고 쫄깃하고, 구포에 부는 강바람 바닷바람을 머금기라도 한 듯 짭조름하다’고 표현했던 ‘국시 가게’에 들러 한 그릇 뚝딱 비웠다. 소박한 국수 한 그릇과 달리, 구포시장의 기억이라면 철장에 갇힌 개들의 슬픈 눈과 털이 다 깎인 채 축 늘어져 주인 손에 끌려가던, 충격적인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60년 만에 구포 개시장이 폐업됐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해결 과정이 담긴 백서가 발간 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개 집사인 내게도 환영할 일이었다. ‘뜬장’이 철거된 자리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보신원 간판 아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 몇 명이 보일 뿐이었다. 역사의 현장에 잠시나마 발을 담근 나는 자리를 떴다.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되면 ‘녀석’과 함께 꼭 한번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녀석과 인연을 맺은 건 2016년이었다. 다섯 마리 중 한 마리를 지인한테서 받았다. 녀석이 선택된 기준은 뭘까. 개한테도 팔자가 있다면, 녀석은 내게 올 팔자인 모양이었다. 나는 ‘달’이라고 미리 이름까지 지어놓았다. 달, 미스 문, 흡족한 이름이었다. 개를 키워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로빈’은 여러 번 집을 나간 적이 있는 상습범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왔더니 로빈은 이미 가출한 상태였다. 그리고 키운 개가 ‘쫑아’였다. 내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걸 좋아했다. 목욕탕까지 따라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목욕탕에서 나오자 쫑아가 트럭에 치였고 차주가 가지고 갔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나는 목욕탕 바구니를 든 채 결심했다. 더는 개라는 녀석들과는 연을 맺지 않기로.

그런데, 어쩌다, 또, 연이 닿은 건지 모르겠다. 이것도 팔자인가?

녀석은 애교가 많았다. 산책할 때면 모르는 사람 아는 사람 가리지 않고 달려가 아는 척을 한다. 꼬리를 흔드는가 하면 몸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눈 맞추기를 해야만 그제야 제 갈 길을 간다. 녀석은 자신보다 큰 개든 작은 개든 항상 몸을 바짝 엎드린 채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앞서가다가도 멈춰 뒤를 돌아보고는 내가 따라오는지 늘 살폈고 그렇게 발을 맞춰주면서 걸었다.

짖는 것마저 잊어버린 듯 아파트에서 ‘착한 개’라고 소문이 자자하다. 녀석은 ‘소통과 배려의 아이콘’이다. 어쩜 주인하고는 닮은 곳이 한구석도 없는지.

낯가림과 쭈뼛쭈뼛한 성격 탓에 나는 타인과 친해지는 게 쉽지 않았다. 입은 동상이라도 걸렸는지 말 한마디 잘 내뱉지 못했다. “그냥, 사람보다 동물이 좋은걸.” 핑계 같은 변명을 하곤 했다. 타인과의 거리를 재고 말 섞기 싫어하는 귀차니스트였다. 말이 주는 그 공허함이 나를 더 공허하게 만들었던 때가 있었나 보다.

녀석은 달랐다. 사람들에게 자기 존재를 알리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나름 자신의 방법으로 소통한다. 소통이란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먼저 다가가 아는 척할 것, 길을 터줄 것, 가끔 뒤돌아봐 줄 것, 눈 맞추기를 할 것, 발맞춰 함께 걸을 것. 그것이 소통의 참 의미라는 걸 말이다. 녀석의 방법이 촌스럽지 않다. 녀석에게서 한 수 배우고 만다. 녀석 덕분인지 요즘은 만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조금 어색하고 조금은 뻣뻣한 인사지만. 상대방에게서도 같은 인사를 돌려받는다. “달이가 주인을 닮아 사교성이 좋은가 봐요.” “개가 행복해 보여요.” 뿌듯한 마음에 어깨를 으쓱거린다. 녀석이 나를 닮아 그렇단다. 반전이다. 녀석과 함께하는 산책이 즐겁다.

“이제 좀 알 것 같아. 생텍쥐베리 말처럼 우린 이미 서로에게 길들여져 있었던 거야. 그래서 우린 서로가 필요하다는 걸. 출근할 땐 문앞에서 응원의 눈길로 바라봐주고 지루한 시간을 무던히 기다려주는 너. 실룩거리는 엉덩이가 좋고 글 한 줄 쓸라치면 마우스를 내동댕이치는 심술마저 사랑하는 나. 따뜻하고 소중한 것을 가르쳐 준 달아, 너는 최고의 개야.”

오늘도 녀석과 산책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 기다려주면서 걷고 있다. 함께여서 밤바람이 차갑지 않다. 하늘에 보름달이 떴다. 마음에 더 환한 달이 뜬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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