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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에세이] 흙수저 감독은 ‘라떼’가 없다 /송강영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0-03-04 19:37:43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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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핫한 유행어 중 하나가 “라떼는 말이야”이다. 이는 나이 많은 어른이 후배들의 의견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나 때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꼰대 상사’를 풍자한 말이다. 한마디로 기성세대를 비꼬는 유행어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와 박종환, 박항서, 정정용 그리고 최근 한국 축구 올림픽 9회 연속 진출의 역사를 쓴 김학범 감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선수 시절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자랑질할 ‘라떼’는 없지만 지도자로는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달콤한 ‘라떼’가 없을 법한 감독들이 일반 상식과 달리 스타 플레이어나 국가대표 출신 감독들보다 좋은 성과를 거둔 비법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축구선수로는 반지하의 삶에 가까웠던 필자의 상상력과 저택 출신 감독 몇 분의 의견을 모아 글을 작성해보았다.

흙수저 출신 감독의 첫 번째 성공 비결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에 대한 영화계의 평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충무로에서 봉준호 감독은 ‘권위적이지 않고 배우·스태프의 가치를 존중하며 최고의 시너지를 만들어 냈다’고 평가했다. 성공 비결치곤 별로 알맹이가 없는 것 같지만 절대 권력이 통용되는 실제 현장이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라떼’가 없는 성공한 흙수저 출신 감독들도 한결같이 선수, 스태프와 허물없이 지내면서 마음을 훔쳤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성공 비결은 누구한테든 적극적으로 배우고 교만하지 않다는 점이다. ‘라떼’가 풍부한 국가대표 출신 감독들은 ‘자신의 경험’에 얽매이는 경향이 강한 측면이 있다. ‘내가 최고인데 누구한테 배워’라는 태도 말이다. 몇 년 전 국내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자 현재 유명 프로팀 B 감독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과거 국가대표와 프로선수 시절 가장 인상적이거나 자기보다 잘한 선수가 있으면 한 명만 꼽아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필자 같으면 빈말이라도 한 명 정도는 지명했을 텐데, 대화가 끝날 때까지 피식 웃기만 할 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당시 B 감독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다’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세 번째 성공 비결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발버둥을 쳤다는 점이다. 경력, 인맥, 평판도가 떨어지는 흙수저 출신은 체면을 중시하는 스타 출신과는 달리 스스로 자기 안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흐르는 물에 이끼가 끼지 않듯 닥치는 대로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인생 역전에 대한 의지와 근성이 남달랐다는 것이다. 정정용, 김학범 감독은 바쁜 와중에도 체육학 박사 학위까지 딸 정도로 학문에 대한 갈급함을 보여준 것을 보면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하고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흙수저 출신이 성공할 수 있는 마지막 요인은 대한축구협회에서 제공하는 지도자 교육을 착실히 이수하고 국가대표 출신이 시시하다고 거들떠보지도 않던 유소년 지도자과정부터 차곡차곡 경험을 쌓았다는 점이다. 틈새시장을 파고든 전략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국가대표급 지도자는 대표선수 출신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하지만 국가대표 출신들이 노마크 찬스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계속 ‘똥볼’을 차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하였다. 흙수저 출신들은 2000년 이후 대한축구협회에서 제공하는 지도자 연수 프로그램은 물론 전 세계의 지식과 정보를 닥치는 대로 습득하면서 지도력과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볼 수 있다. 흙수저 출신 감독이 보여준 성공은 분명 대표선수 출신들에게는 메기 효과로 작용하여 한국 축구를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 확신한다.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핀다고 했다. ‘1인치의 벽’을 뛰어넘은 흙수저 출신들의 성공이 그저 우연이 아닌 흔들리며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피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시기 질투보다는 아낌없는 응원과 성원을 주는 사회를 꿈꾸어본다.

동서대 레포츠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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