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형사법에 미란다 원칙이라는 게 있다. 형사 피의자에게 먼저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선임권을 고지해야 된다는 원칙이다.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확립된 원칙이다. 거창한 것 같지만, 미란다는 사람 이름이고 그는 납치 강간을 저지른 흉악범이었다. 이러한 범죄에 대하여 애리조나 주 법원에서 미란다에게 최저 20년, 최고 30년의 중형을 선고했고 주 대법원에서까지 유죄가 인정됐다.

그러자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였는데, 상고이유는 수정헌법 제5조에 보장된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제6조에 보장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연방대법원은 대법관 9명이 5대4로 미란다의 손을 들어주며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이유는 위 헌법에 규정된 진술거부권이나 변호인선임권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를 미란다 판결이라고 하는데, 미란다가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었기에 1960년대 분위기에서 흉악범을 석방한다며 연방대법원이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후에는 위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라 ‘미란다 경고문’을 만들어 수사관이 피의자를 체포·신문할 때 이를 미리 읽어주도록 했다. 우리 법도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함께 미란다 원칙을 알려주도록 하였고 법원에서도 이를 무시한 체포는 정당한 공무집행이 아니라는 판결까지 하였다. 지금은 이런 제도가 일반화됐고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개인의 형사처벌보다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보장이 훨씬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역에서 이른바 ‘묻지마 폭행’ 사건이 있었다. 30대 남성이 자기와 아무 관련도 없는 여성을 때려 심한 상해를 입힌 사건이다. 철도경찰이 범행을 저지른 남자를 주거지에서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고 그러자 많은 사람이 영장판사를 비난했다. 이런 파장을 예상하였는지 판사도 영장을 기각하면서 자세한 기각사유를 달았다.

그 중요 부분을 인용하면 “긴급체포 제도는 영장주의의 원칙에 대한 예외인 만큼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해 허용되어야 한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신원과 주거지 및 휴대전화 번호 등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고, 피의자가 주거지에서 잠을 자고 있어 증거를 인멸할 상황도 아니어서 긴급체포가 위법한 이상 그에 기초한 이 사건 구속영장 청구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하였다.

긴급체포가 정당하려면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어야 하는데 자기 주거지에 있었고, 자고 있었다면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본 것이다. 게다가 수사관들이 주거지 출입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는데 이에 대하여는 “한 사람의 집은 그의 성채라고 할 것인데, 비록 범죄 혐의자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주거의 평온을 보호받음에 있어 예외를 둘 수 없다”고도 했다.

판사가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에 대해 말이 많지만, 나는 영장판사의 긴급체포가 위법하다고 한 판단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도망가지 않았기에 주거지에 있었던 것이고 폭행 장면이 CC-TV로 확인됐다면 더 숨길 증거도 없다. 주거지가 파악되고 수사기관이 이미 증거를 갖고 있다면, 영장을 발부받아 체포하는 게 맞다. 수사 단계에서 법원 심사를 받도록 제도화한 것은 인권침해를 막는 매우 중요한 장치다. 그렇기에 헌법에도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에서 이를 구체화한 것이다.

권력은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될 수 있으면 편한 방법으로 달성하려는 속성이 있다. 그렇기에 권력이 사법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다면 많은 인권침해가 일어날 수 있다. 문명의 법은 결과만 중요시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고문이 최고의 방법일 것이다. 미란다 판결은 개인의 범죄보다 국가권력이 적법하게 행사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명숙 전 총리의 사건에 국가권력인 검찰권의 행사가 적정했는가에 대한 여러 의문이 등장하고 있다. 미란다 판결에서 보듯 검찰권이 헌법과 법률에 맞게 행사됐는지의 여부는 개인이 비리를 저질렀냐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고 중요한 사안이다. 우리가 1960년대 미국보다 못해서야 되겠나.

변호사·법무법인 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