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인들을 만나면 코로나19의 정복 가능성과 기업의 생존책이 늘 화제에 오른다. 바이러스 종식 여부는 과학에 맡겨야 할 영역이다. 우리가 되새겨봐야 할 부분은 후자다. 개별 기업이 처한 환경이 서로 다른 만큼 일률적인 해법을 정의할 수는 없어 더 고민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기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견딜 현금 준비와 경쟁력 일신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만난 조선기자재사 대표는 “국내 조선빅3의 카타르 발 LNG선 수주가 실현된다 해도 일감(하청)이 부산 기업에게 전달되기까지는 아직 1년 반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일감 절벽으로 기로에 선 기업들은 무급 휴직→구조조정 순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목소리도 냈다.
뉴욕타임즈의 토마스 프리드만은 지난 3월 칼럼에서 문명사는 이제 코로나 이전 (BC)과 이후(AC)로 다시 써나가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 기업은 어떻게 변화관리를 해야 할까.
우선 대륙과 해양의 접점인 물류기지라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해외시장을 시야에 넣고 전략을 수립하는 수밖에 없다. 올해 많은 기업이 공급체인 붕괴로 큰 낭패를 경험했다. 반면 일찌감치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은 내수 의존 기업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봤다. 글로벌 가치사슬과 생산 네트워크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미래 먹거리는 좁은 국내시장이 아니라 해외시장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와 아세안을 합친 합성어인 ‘인디아세안’을 타깃으로 삼아 접근하는 전략인 ‘니어 쇼어링 (Near shoring)’이야말로 핵심이다.
둘째, 그동안의 빠른 추적자(Fast Follower) 전략에서 벗어나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과감히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수입 대체나 모방형 제품으로 선발업체를 따라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한류 대표상품인 K-방역이나 K-food·K-beauty는 지금 당장에라도 퍼스트 무버가 가능한 분야다.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수소산업·모빌리티·디지털헬스케어·관광 MICE와 콘텐츠 산업부터 퍼스트 무브 전략을 구체화시켜야 할 때다. 최근 부산을 달구고 있는 스타트업 또한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본 글로벌(Born Global)’형 창업을 통해 세계 시장에 우뚝 솟는 기업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다.
제품의 서비스화와 서비스의 제품화처럼 업종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즈니스 모델 수용도 요구된다. 제조업에 서비스를 결합시킨 매뉴비스 (Manufacturer+Service와 ▷기존 제품의 서비화를 지칭하는 서비타이제이션(Servitization) ▷서비스 업체가 제품을 출시하는 프로덕티제이션(Productization)도 추진해 볼 과제다. 비대면 온라인 플랫폼이 하나의 비즈니스 영역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만큼 제품 개발사가 온-오프라인을 융합해 최종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이른바 D2C(Direct to Consumer) 비즈니스 모델도 적극 활용하자. 서비스기업 카카오가 카카오프렌즈라는 캐릭터를 상품화해 판매하는 것처럼 융합 비즈니스인 서비스의 제품화(Productization)도 부산 기업이 벤치마킹해야 할 분야다.
정보기술과 디지털 경제의 활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ABC 3종 세트로 불리는 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하거나 접목하는 노력이 그 일환이다. 연초 데이터 3법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부산시도 빅데이터 산업화 지원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부산경제진흥원 역시 중소기업 제품의 온-오프라인 융합 플랫폼을 구축 중이다. 이러한 사업에 지역기업이 동참할 것을 권유한다. 동시에 기업 스스로도 온-오프라인의 융합 비즈니스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단절된 국내외 산업협력 생태계를 부산 기업이 선제적으로 복구시킬 필요가 있다. 세계 경제가 코로나19로 비틀거리고 있지만 끊어진 공급 사슬을 다시 연결하고 부활시키는 기업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한중일 3국이 정치 외교적으로 다소 삐걱거리고 있는 사이 부산이 강력한 도시외교를 가동해 공생 시스템을 재가동한다면 기업의 새로운 활로를 열 수 있을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부문별로 구축한 경험·지식·연구개발 성과를 공유하고 활용해 ‘함께 미래는 여는’ 걸음을 담대하게 내딛자. 부산은 개방과 협력의 DNA를 태생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다. 하다 못해 전통시장 이름도 ‘국제시장’이고 지역 대표신문사도 ‘국제신문’ 아닌가.
이상 다섯 가지를 요약하면 ‘멀리 보고 함께 가자’는 것으로 정리 할 수 있겠다. 당장은 어렵고 고통스럽지만 역동적 발전 비전을 염두에 두고 국내외 파트너들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자는 얘기다. 이것이야말로 위축된 경제를 회복시키는 가장 강력한 복원력 (Resilience)이다.
박기식 부산경제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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