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감천항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이 발생한 뒤 항만방역을 강화했다고 하나, 실제 구멍이 숭숭 뚫린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아 승선검역 대상국으로 지정된 러시아 선원들이 탄 배가 입항했는데도 전자검역(서류검역)만 했다가 뒤늦게 환자를 확인했다. 그 사이 최대 50명에 이르는 항만노동자가 배에 올라가 수리작업을 한 터여서 방역 강화는 시늉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방역당국은 지난달 21일 감천항에 들어온 러시아 선박의 집단감염 사건 이후 중국 이탈리아 등에 이어 러시아를 승선검역 대상국으로 추가 지정했다. 하지만 지난 8일 감천항에 입항한 원양어선(499ｔ)은 선주와 선원이 러시아인인데도 투발루 선적이라는 이유로 승선검역을 하지 않았다. 앞서 이 배가 지난달 20일 처음 감천항에 들어와 지난 7일까지 머물다 선원 교대를 위해 잠시 출항하기 전에도 같은 이유로 전자검역만 했다. 그러다 일부 선원이 하선한다고 신고한 지난 13일에야 승선검역을 실시해 1명의 코로나19 환자를 발견했다. 그 때는 이미 한국 노동자들이 승선해 배 수리를 하고 난 뒤였다.

이런 방역 허점이 생긴 건 형식적인 승선검역 대상국 지정 탓이다. 선주들이 세금 절감 등 편의를 제공하는 나라에 선박을 등록하는 편의치적 제도가 성행하는 현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러시아 아닌 다른 코로나19 다발국의 선주가 편의치적으로 선적을 달리해 입항했을 때도 감염 위험을 막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방역당국은 승선 작업자와 선원 간 비대면·비접촉 지침을 마련했지만, 이는 강제사항이 아니다. 안 지켜도 제재할 수 없다.

앞선 집단감염 사건 당시 항만노동자들은 “안심하고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방역당국에 호소한 바 있다. 방역당국이 이 호소를 귀 담아 들었는지 의문이다. 그랬다면 검역 시스템을 이리 허술하게 만들지 않았을 게다. 세계 곳곳을 돌며 물건을 싣고 내리는 국제 환적이 기본인 해운의 성격상 선박은 감염원에 노출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검역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