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네이버가 우리나라 대중가요와 관련해 재미있는 통계를 뽑아낸 적이 있다. 1920년부터 1980년대 이전에 나온 대중가요의 가사를 살펴봤더니 가장 많이 거론된 직업이 외항선 선장이나 간부 등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마도로스’(matroos)로 나타났다.

이 단어는 1960년대에 불린 노래에 주로 등장했다. 이 때는 우리나라 경제가 막 걸음마를 떼던 시기다. 요즘과 달리 해외 여행은 꿈꾸기조차 어려웠던 때. 그런 만큼 국민 눈에는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선원들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흰색 제복을 입고 파이프를 입에 문 채 이국의 여성과 밀어를 나누는 마도로스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황홀하지 않았겠는가.

근데 세상사가 늘 그렇듯 모든 일에는 두 가지 모습이 존재한다. 외항선 업무가 얼마나 고된지는 누구나 다 안다. 변변한 장비조차 없었을 1960년대라면 일의 강도는 더 높았을 것이다. 거센 파도와의 사투에서 목숨을 잃은 선원들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이들을 우리나라 경제를 살린 산업역군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마도로스에 대한 갈망이 예전 같지 않을 듯하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는 지금도 외항선 승선을 바라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해양·수산 관련 대학을 다니는 이들은 바다에서 자신만의 꿈을 펼치려 한다. 한국해양대의 경우 해사대 소속 학생은 3학년 때 1년 동안 승선 실습을 받아야 한다. 승선 경력이 있어야만 해기사(항해사·기관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 선박과 외부 선사의 실습선에서 6개월씩 근무한다.

안타까운 것은 해기사가 되는 과정 중 하나인 이 실습 업무가 무척 힘들다는 점이다. 일 자체가 수월하지 않은 까닭도 있을 터지만 아직도 곳곳에 전근대적 교육 방식이 남아 있어서다. 현장에서는 체계적인 업무 전수보다 ‘몸으로 때우라’는 방식이 통용된다. 때로는 선배들로부터 부당한 대우까지 받는다. 최저 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실습비가 지급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지만 실습생들은 정식 선원이 아닌 까닭에 제대로 법적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

게다가 실습생들은 선박 내에서 모욕적인 행위를 당해도 참을 수 밖에 없다.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해 졸업 후 취업에 지장이 생길 것을 두려워해서다. 해양·수산 관련 대학이 적다 보니 외항선 사관들이 한 다리 건너 선·후배로 엮이는 까닭에 대놓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쉽지 않다.

인명사고도 적지 않게 생긴다. 지난 2월에는 해외에서 승선 실습을 하던 한국해양대생이 열사병 증세로 치료를 받다 숨지는 일이 있었다. 2017년에는 목포해양대 학생도 실습 중 목숨을 잃었다. 이 때문에 힘들게 양성된 해기사 가운데 80%가량이 의무 기간이 끝나면 미련 없이 하선한다는 말도 있다.

열악한 실습 환경을 개선하라는 주장이 거세지자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올 2월 선박직원법 개정에 이어 8월 초 관련 법 시행령을 손질했고 지난 19일에는 ‘현장실습 운영지침’과 ‘현장승선실습 표준협약서’를 고시했다. 일련의 조치는 실습생의 권리 보호가 핵심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부당행위 신고, 해수부의 적극적인 근로감독 이행, 선상 생활 부적응 실습생에게 조건 없는 하선 권리 부여 등이 담겼다.

또 실습생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했다. 선사가 현장 승선 실습 계약을 체결하지 않거나 표준협약서를 사용하지 않으면 360만 원, 계약 사항 미준수 때는 25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린다.

더 강력한 실습생 권리 보호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해수부 정책이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먼바다에서 일어나는 부당행위를 일일이 감독하기 어려운 데다 법 위반 때 부과하는 과태료 액수가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신고자 보호 방안과 당사자가 취업 때 당할지도 모를 불이익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부족하다. 여론에 밀려 주먹구구식 행정을 한다는 비판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미흡함에도 실습생 인권 침해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점은 일단 눈여겨볼 만 하다. 따라서 해수부는 관련 법이 시행되는 만큼 선사들이 해당 수칙을 실제로 이행하는지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필요하다면 보완을 통해 더 나은 제도가 만들어지도록 해야 한다. 선사들도 정부의 지침을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

잘못된 관행은 하루빨리 고치는 것이 최선이다. 해양강국의 초석이 되겠다고 나선 젊은이들에게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게 ‘훌륭한 마도로스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해괴망측한 논리가 발붙일 곳은 이제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

세종본부장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