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3분의 2가 훌쩍 지나갔다. 20세기 구태를 털고 21세기 진정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였던 2020년에 미래 희망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은 지난 8개월간의 시간 속으로 훅 쓸려갔다. 이 시대 사람들은 전염병 대유행에 속수무책이다.

2020년은 인류사회에 완전 딴 판의 생활 패턴을 요구하고 있다. 숫자에 신비감이 깃든 연도에 포비아, 뉴 노멀 등 낯선 용어가 판을 친다. 마스크가 몸의 일부로 착 달라붙은 세상에서 모든 분야가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었다. 세계 질서는 혁명 수준으로 급변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 표준이나 기준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이 짧은 순간에 세상이 돌변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전쟁 시기에도 이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지 않았다.

2020년의 시간은 이제 3분의 1이 남았다. 예년 같으면 너나없이 다음 해 계획 수립에 들어갈 시기다. 일단은 닥친 재앙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21세기 형 ‘뉴 노멀 시대’에 걸맞은 설계에 들어가는 등 올해 남은 기간을 알차게 보내야겠다.

대한민국의 희망 찬 미래를 펼쳐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임기도 3분의 2가 흘러가고 있다. 1988년 2월 25일부터 시작된 ‘새 공화국’의 일곱 번째 정부는 2017년 5월 9일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뒤 다음 날 바로 출범했다. 2017년 5월 10일 낮 12시 국회 로텐더홀에서 약식 취임식을 한 문 대통령은 “신명을 바쳐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선과 동시에 60개월간의 공식 업무를 곧바로 개시한 이 정부의 활동 기간은 일주일가량 지나면 3분의 1을 남기게 된다. 지난 40개월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는 현 정부 임기가 진행형이어서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출범 당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 아래 제시한 100대 국정과제의 성과와 과오는 공정한 잣대가 바탕이 된 엄정한 재단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 편 들기 싸움’이 더 치열해지면서 국민적 분열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는 점은 문제라는 진단은 지금이라도 내릴 수 있다. 최근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가 벌인 행위를 놓고 극명하게 엇갈린 해석과 분석이 담긴 ‘조국 백서’와 ‘조국 흑서’ 등 두 권의 책을 접하는 독자들의 성향에 따라 호 불호가 극단으로 갈렸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잘잘못을 따지는 상식논리는 온데간데없다. 팬덤 지지층에 기대 권력과 유무형의 이권을 누리는 일부 세력의 집요한 편 가르기 탓에 미래가 실종된 느낌이다.

편 가르기는 앞선 세대의 망국적인 지역감정보다 더 무서운 폐단을 낳고 있다. 김대중 정부를 중심으로 지역감정 해소에 국민적 역량을 모은 결과, 적어도 지역 가르기를 일삼는 사람은 구태 인물로 전락하는 시대가 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정부의 남은 임기가 잘 마무리됐으면 좋겠다는 것은 상식을 가진 국민의 바람이다. 그리고 2022년 5월 10일 새 정부가 들어설 때는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는 편 가르기가 더는 설 자리가 없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미래 지향적인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업적을 일구는 현 정부의 담대한 역할을 기대한다. 내 편이라도 반칙과 부정에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뉴 노멀 시대’를 열었으면 한다. 시간은 아직 남았다.

부산 관가의 권력 지형이 확 바뀐 상태로 출범한 민선 7기 지방정부 임기도 어느새 절반을 넘어 3분의 2 지점으로 향하고 있다. 시민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철옹성보다 더 견고했던 특정 정당 중심의 지방 권력에 경종을 울리고 균형 잡힌 지역사회의 미래를 열고자 했다. 그 해 7월 1일 이전과 결이 다른 민선 시대가 열리자 기대도 컸다. 하지만 새로운 지방권력 세력의 존재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시민이 많아지고 있다. 지방권력의 내 편 챙기기도 여전하다는 평이다.

민선 7기 부산시정 출범부터 가장 많은 정성을 쏟은 신공항 건설은 변죽만 울리고 있다. 일선 기초자치단체는 지역주민의 성에 차는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22년 6월 1일 예정된 민선 8기 지방선거에서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그나마 현직 프리미엄을 누리려면 하산 길이라도 잘 닦아야 할 것이다.

특정 세력의 집단이익 사수 의지가 밑바탕에 깔린 프레임 걸기와 증오의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편 가르기는 확대 재생산되는 분위기다. 가덕도 새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언제 이착륙할 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권력을 위임 받은 정부와 지방정부는 남은 임기에 제대로 된 유산을 남기는 활약을 펼치길 바란다. 화려한 시작 못지 않게 아름다운 끝도 중요하니까. 마스크를 언제 벗을 지 모르지만, 우선은 올해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고 볼 일이다.

논설위원 choonjin @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