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 등 자연의 대역습 앞에서 우리는 근대성 붕괴를 목격한다. 바이러스의 다양한 변이는 인간의 대처를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 서로 접촉할 수 없는 언택트 시대가 되면서 학교 체제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 디지털 교과서, 스마트 교실, 블렌디드 러닝 등 지난 20여 년간 교실 수업 혁신을 위해 노력했지만 학교 현장의 큰 변화는 없었는데, 코로나 사태는 불과 몇 달 만에 학교 수업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많은 미래교육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다면(multifaceted)’ 교육의 출현을 예상했는데,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가 그 시기를 앞당긴다.

과밀 학급과 거대 학교에서 수많은 학생을 밀집·밀접·밀폐된 교실에 집합시키고, 학생을 체계적으로 길들이는 표준화된 지식 및 시험을 통해 등급과 우열을 가리는, 근대 산업사회의 대량생산체제·신자유주의로 얼룩진 경쟁적 학교교육체제에 설상가상으로 바이러스 팬데믹이 겹쳤다. 그러자 아이들의 학습과 발달 및 돌봄의 위기는 더욱 심화된다. 방역과 안전에 치우친 한국판 뉴딜 정책 그리고 AI를 활용한 학습관리 프로그램 개발·보급을 우선하니 그렇다.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는 디지털 기술에 의한 스크린 수업과 새로운 교실 역할을 하는 온라인 수업은 모든 교육을 획일화하는 근대 교육의 또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학교가 대학입시에 맞춰 전통적 교과 시간표를 일괄 편성하는 방식은 시대적 수명을 다했다. 수명을 다한 근대 교육의 대량생산 체계를 넘어 그 이후 문명을 준비하는 포스트 코로나의 ‘장기 비상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누적된 한국 교육체제 개편의 필요성은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K-방역에 어울리는 K-교육이 나올 때가 된 것이다. 지금 지역 방역과 함께 지역교육이 그것을 요청한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혁신학교 및 마을교육공동체 정책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코로나 이후 교육체제가 기술공학적 교수·학습 환경에 한정돼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사이버 공간에서는 사람의 삶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에,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 없는 교육’으로 경도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타자(the Others)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 철학자 레비나스는 “영혼의 진정한 소통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관계에 있다”고 역설했다. 코로나로 접촉이 극도로 단절되면서 역설적으로 ‘만남’의 교육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사람 사이의 전염을 막기 위해 물리적 거리를 두되 사회적 관계망 형성은 더욱 촉진되어야 한다. 모든 학생이 배움의 기쁨을 누리며 역량을 기르고 인간적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돕는 일, 그리고 교사·학부모 등 교육 주체가 과도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겪지 않도록 아이들의 특별한 돌봄과 특수교육을 할 수 있는 학교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학교교육 체제가 디지털 원격교육 활성화 차원을 넘어 아이들의 학습, 일, 놀이, 쉼을 적절하게 보장하는 삶의 공간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학교는 밀집형 공간이어서 이러한 것이 어렵고, 방역에도 취약하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면 66㎡(20평) 남짓한 교실에서 적어도 학생 한 명당 3.3㎡(1평) 정도가 보장되도록 해 코로나가 재유행해도 학생들이 감염 없이 등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줄이고 이에 맞게 교사 수를 늘리는 정책을 펴야 한다.

방역 ·배움·돌봄이 동시에 가능한 학교 공간 재설계도 요구된다. 학교의 미래는 궁극적으로 ‘먹고 사는’ 경제의 문제에 관심을 두는 ‘산업주의’에 기초한 기술공학적 근대성 및 근대 교육의 한계를 넘어 ‘죽고 사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두는 지속가능한 ‘생태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코로나 대재앙 사태는 바우만이 예견한 대로 고체적 근대성을 넘어 액체적 근대성(liquid modernity)으로 나아가는 거대한 전환의 계기가 돼야 한다.

개인과 공동체,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상생이 가능한 생태적 관계망을 형성하는 학교 공간이 필요하고, 그 학교 공간은 또한 생태적 관계망을 필요로 함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부산교대 명예교수